찰스 핸디의「포트폴리오 인생」리뷰
책을 통해 찰스 핸디를 처음 만난 것은 2015년 마더코칭 수업을 통해서였다. 당시 나는 구본형 선생님의 매력에 흠뻑 빠진 시기였기에 찰스 핸디를 있는 그대로 만나지 못했다. 구본형 선생님이 찰스 핸디를 롤모델로 삼아 스스로의 삶을 디자인하고 재구성하여 살아갔다지만, 내게는 오히려 반대로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그래서였을까 2015년 8월 22일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감흥이 순수히 느껴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7년, 마더코칭 연구소의 추천도서로 소개되면서 찰스 핸디와 재회했다. 처음 만나는 책들과 달리, 이미 읽어본 책에 대한 첫 느낌 덕분일까? 별다른 기대없이, 그저 휘리릭 읽고 어서 리뷰를 써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이미 대충 알고 있으니 대충 읽고 대충 써도 아무도 모를 거야.
2년 전 느낌으로는 구본형 선생님의 삶과 비슷한 사람의 삶이니, 그 이상은 없을 거야.
그러니 금세 읽힐 것이고 리뷰도 금세 쓸 수 있을거야.‘
이런 바보같은 생각들로 <포트폴리오 인생> 읽기를 차일 피일 미뤄두었다.
그러던 차에 선생님의 리뷰에서 다음 글귀를 발견했다.
'피터 드러커와 톰 피터스와 함께 세계를 움직이는 사상가 50인'에 올라있는 영향력 있는 사상가
세계를 움직이는 사상가로서의 찰스 핸디,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였는데, 나는 과연 찰스 핸디의 무엇을 알고 있던 것일까?
내 안에 질문이 가득 채워지고서야 나는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질문 없이 읽었던 처음과 내 안에 질문이 가득해 지고서 만난 지금....
같은 책을 읽었지만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였는데, 나는 과연 찰스핸디의 무엇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을까 싶었다. 다시 만난 찰스 핸디를 좀 더 알고 싶어졌고, 정독했고, 밑줄을 다시 그었고, 그의 삶을 한 발 한 발 따라가며 읽었다. 70을 넘긴 그가 배우고 느끼고 경험했던 것들을 편안하게 이야기 하고 있는 <포트폴리오 인생>.... 마지막 책장을 덮는데 감동이 밀려왔다. 삶의 굽이굽이마다 건져 올린 배움과 깨달음이 이제야 내 안에 들어왔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야 자신의 인생을 진정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가슴에 깊이 들어왔다.
344> 여든의 나이에 과거를 돌아볼 수 있다면, 지금 시간과 정력을 쏟는 많은 것들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송덕문을 읽을 친구는 경력 따위는 대충 넘어가고 고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집중할 것이다. 그리고 추억거리 한두 개를 곁들이고, 고인을 알았던 사람들에게 두고 두고 잊히지 않을 기억으로 끝을 맺을 것이다. 당연히 무슨 일을 했느냐보다 어떤 사람이었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345> 나는 누구에게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어떤 개인적인 유산을 남기고 싶은가?
..... 경력 따윈 잊자. 수십 년 동안 그렇게나 집착해온 것이지만. 책도 잊자. 땅 속에서 썩어갈 육신도 잊자. 사후에 너무도 하잘 것 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고통스럽지는 않다. 태어나기 전의 일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굳이 사후의 일을 신경 쓸 필요가 있겠는가? 개인으로서 나에 대한 기억은 내가 가장 소중히 여겼던 사람들, 즉 가족과 몇몇 절친한 친구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이 전부이리라. 어떤 식으로든 불멸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나를 기억하는 타인의 마음과 가슴속에 있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예상하며 남은 시간을 송덕문에 부합하게 살리라 다짐하는 시기가 너무 늦지 않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그토록 오래 마음이 머물 줄은 미쳐 몰랐다.
2017년, 올해로 4년째 휴직중인 나였다. 경력을 쌓는 일보다 더 중요한 아이와 함께하는 지금에 내 시간을 기꺼이 내어 주리라 다짐했고, 그 다짐을 행동으로 옮기며 살고 있다. 그리고 나의 선택이 내 삶에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돌아가야 할 시기가 조금씩 다가오면서 마음이 복잡해진다. 어떤 사람이었느냐’보다는 ‘무슨 일을 했느냐’에 자꾸만 마음이 간다. 아이들 곁에서 진정한 교육을 실천한 교사이면 좋겠다 싶다가도, 그래도 품위 유지를 할 정도의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이중적 마음들이 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그러던 사이 정권이 바뀌고 교사의 지방직 전환 논의가 다시 수면위로 올라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접하고는 노여움보다는 담담한 마음이 들면서 차분해 졌다. 그러면서 찰스 핸디의 <포트폴리오 인생>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처음 이 책을 접할 때만 해도 내 삶은 안정적이라 생각했다.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나는 교사로서 40년은 생활할 수 있는 직업군이니 안정적 수입은 보장된 셈이었다. 성과금이 차등지급 되긴 하지만 매년 오르는 호봉에 비하면 그닥 영향력이 없는 것이니 그럭저럭 아이 하나 키우며 살아가는데 경제적으로 허덕이지는 않는 꽤 괜찮은 밥벌이였다. 어린 시절부터 교사의 꿈을 키웠고, 그 꿈을 이루었고,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중의 하나가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것이니 앞으로 남은 삶 속에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날이 그래도 꽤 오래 남아 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관계를 맺고 만나야 하는 교사로 서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아이들이 더 이상 원하지 않을 때, 그 눈빛은 교사를 절망하게 한다. 그 절망을 견디지 못하는 노년의 교사들은 선택해야 한다. 관계를 거부한 채 밥벌이라는 이유로 절망을 견디든지, 아니면 관계를 끝내던지....
아이들 앞에 섰을 때 더 이상 아이들에게 줄 것이 없는 내가 되었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아마도 나는 절망을 견디지 못할 것 같다. 더 이상 아이들에게 줄 것이 없는 그때가 되면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교직을 떠나와야 하겠구나.....
그때가 언제인지 아직은 잘 가늠이 되진 않는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 떠나옴의 시간들을 너무 아파하진 말아야 겠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하나의 문이 닫히면 하나의 문이 열릴 테니...’
‘내 인생을 어떻게 포트폴리오 할 것인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에게 던진 중요한 질문이 되었다.
수없이 다가오는 기회들 중에 ‘온전한 내가 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나는 행동할 것이다. 선택이 항상 옳지는 않을 것이다. 때론 실패가 두려워 행동에 옮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제와 다른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가장 잘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다.
나는 ‘가르치고 배우며 성장하도록 돕는 일’을 좋아하고 잘 해내고 싶다. 나의 도움으로 저마다의 결대로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 과정을 열심히 살고, 그 과정들을 글로 기록할 것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했던 다짐을 지킬 것이다. 삶이 먼저이고 그 ‘삶을 글로 쓰는 내가 될 것’이다. 그 일을 잘해내고 싶다. 바라건데 그 글이 성장을 꿈꾸는 타인에게 도움이 되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하지만 영략력을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가 즐거우니 계속 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삶의 매순간이 가르침이고 배움이며, 그 삶이 모여 내가 된다는 소중한 깨달음이 <포트폴리오 인생>을 통해 얻은 성과다. 과거의 삶속에 숨겨진 가르침들을 찾아내고 다가올 가르침을 기대하며, 오늘도 나는 꿈꾼다.
‘온전한 내가 되기 위해 가장 잘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나를 ......’
매일 꾸준히 책 읽고 글 쓰고 삶을 살고, 다시 글 쓰고.,, 그리고 성장하고..
이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