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육아휴직
덜컥 겁이 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무늬만 엄마였다. 내 손으로 이유식 하나 제대로 끓이지 못해 방학이면 일주일에 두 어 번을 시어머니께서 다녀가셨다. 워낙 체력이 약했던 나인지라 시어머니께서 끓여주신 이유식을 꺼내 데워서 먹이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벅찼다. 그런 내가 아이를 온전히 돌볼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육아에 대한 부담감과 함께 직장에서의 상황도 마음에 걸렸다. 당시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고 있었다. 육아휴직에 들어가면 내가 맡은 아이들을 마무리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휴직을 하더라도 맡았던 아이들은 마무리 되는 2010년 3월이 되었으면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왜 나만?’ 이란 생각에 억울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이 너무나 당연스럽게 여자에게만 온전히 부담 지워지는 것도 싫었고, 휴직으로 인한 경력단절의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것도 화가 났다. 그런 나는 신랑에게 나의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앞으로 일을 병행하다 보면 불가피한 일들도 생길 것이고, 그럴 때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주변에 있길 원한다고 했다. 나는 육아에 대해 잘 모르니, 나보다 육아 전문가인 베이비 시터를 구하자고 했다. 그때 신랑이 남긴 한마디가 내 가슴을 치고 들어왔다.
“ 전문가보다는 핏줄이 낫다. 네가 안 하면 내가 한다.”
그 말을 마친 남편은 내 품에 안겨있던 아이를 안고 목욕을 씻기러 욕실로 들어갔다. 뒤돌아 앉은 커다란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누군가 육아휴직을 해야 한다면, 아빠보다는 엄마가 낫겠지......’’
그렇게 나는 남편 덕분에 2009년 9월, 첫 번째 육아휴직을 했다. 16개월이었던 아이는 한창 말도 배우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세상을 배우고 싶었던 시기였다. 할머니와 가곤 했던 문화센터에도 엄마와 함께 갔고, 놀이터도 공원도 엄마와 함께 갔다. 아이는 무럭무럭 잘 자랐고, 너무 예뻤다. 행복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지만 나는 여전히 불안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고, 어서 하루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경력과 호봉을 모두 인정해주는 유급 육아휴직 1년의 기간을 마치기가 무섭게 복직을 결정했다. 210년 9월 복직 전 2-3달 전에 직장 근처로 이사도 하고, 어린이집 적응을 시키면서 완벽하게 복직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아이는 26개월부터 어린이집 생활을 시작했다.
복직하면서 나름 포부도 있었다. 아이도 잘 키우고 내 일도 잘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복직 후 누구보다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 워킹맘 아이라 애도 제대로 못 챙긴다는 소리 듣고 싫어서 말끔히 씻기고 입히고 머리를 빗겨서 어린이집에 등원시켰다. 애 키우느라 직장일에 소홀하다는 소리 듣지 않기 위해 업무시간을 쪼개가며 정성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런데 복직 후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복직 2주 후 추석 연휴 내내 녀석은 고열에 시달렸고, 아침부터 밤까지 울었다. 컨디션이 좋아지면 괜찮아 질거라 생각했던 아이는 알 수 없는 눈물로 엄마에게 매달렸다. 아이 자고 있을 새벽, 출근 준비로 머리라도 감을라치면 욕실 앞으로 달려와서는 안아달라고 울었다. 따라 나온 아빠가 뒤에서 안아준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머리에 비눗물이 뚝뚝 떨어지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이야기를 해도 막무가내였다. 머리 감던 엄마도 울고 안기고 싶은 아이도 울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빠도 함께 울었다. 퇴근 후에도 저녁 준비라도 할라치면 엄마 다리에 매달려 안아달라고 했고, 그러다 문득 이유 없는 눈물이 시작되면 잦아들기까지 3~4시간을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들기도 했다.
직장에서의 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시간 맞춰 출근 준비를 해도 아이의 돌발적 상황들 덕분에 지각 조퇴가 잦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늘 미안해야 했고 부탁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는데, 그런 내가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아이들 앞에 서야 하는 나로서는 밥벌이를 위해 영혼 없이 직장과 집을 오고 갈 자신이 없었다.
괜찮을 거라 생각했던 복직이었는데, 육아도 일도 아이도 그리고 엄마인 나도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