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차이 (객관적 글쓰기)
‘아주 작은 차이’가 만들어 낸 ‘커다란 결과’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들......
독일의 대표적 페미니스트 알리스 슈바르처가 중산층 주부에서 극빈층, 매춘업 종사자, 커리어 우먼까지 독일 여성 15인의 사랑과 성과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글을 썼다. 우리와 다른 시․공간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걷어내기엔 마음 한구석이 자꾸만 찌릿 거린다.
아마도 그 이유는 1970년대, 유럽(독일)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의 삶, 욕망, 존재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들이, 2017년 한국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의 삶과 비교할 때 삶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가 쓰여진 지 40여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여자들은 사랑과 자유, 연민과 욕망, 가정과 직장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갈등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11p) 그 갈등 앞에서 자유 대신 사랑을, 욕망대신 연민을, 직장대신 가정을 선택하는 것이 여자다운 삶의 미덕으로 회자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야기의 주제도 파격적이다. 두 사람간의 은밀하고 사적인 영역이라 여겼던 성에 대해 솔직 담백한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사랑은 본디 평등한 사이에서 가능한 거라, 불평등한 관계에서는 온전한 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p249)는 알리스 슈바르처의 이야기대로 책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일방적이고 강요된 의무적 사랑의 행위에 염증을 느낀다. 그러나 가부장제 사회는 그런 여성들의 삶을 구제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였고, 여성들은 속수무책으로 그들의 삶을 무너뜨린다.
사회적으로도 철저히 외면당하는 그녀들의 삶이 애달프다. 집, 병원, 대학, 직장 그 어디에서도 여성들의 인간적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보듬는 손길을 만나기 어렵다. 스스로가 온전히 살아갈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녀들이 선택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은 그리 넓지 않다.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행동을 취하기엔 그녀들은 스스로를 위한 삶을 사는 방법조차도 잊은 듯 하다.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남편과의 관계가 원만하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부잣집 사모님의 가정주부증후군 사례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사례의 주인공 이름가르트는 살림밖에 모르던 여자였지만 어느 순간 그 모든 것들이 왠지 억울하고 화가 났다고 했다. 그래서 스스로의 삶을 위해 일을 하러 나가고자 했지만 남편의 반대에 극심했다. 현실에 대해 아무리 정확한 판단이 서고 자신의 문제를 똑바로 볼 수가 있다 하여도 복잡한 문제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혼자의 넋두리 쪽으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면 애달프기만 하다.
결국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의 여성은, 생물학적 차이보다는 문화적 요소의 작용으로 점점 더 차별화된다. 아주 작은 차이에서 기인한 남녀차별은 대물림하는 사회제도로 변질되어 남존여비의 형식으로 강요된다. 결국 남녀의 차이가 권력과 무력이 되어 여성의 삶을 강제하기 시작한다.
그런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일을 남자 중심으로 생각하는 습성을 버리기 위한 구체적 훈련이 필요하다. 의존적 태도를 버리고 자기 스스로를 존중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301>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고, 스스로의 삶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감성과 온유함, 민첩하고 섬세한 정서는 여성의 본질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특성일 따름이다. 여성들의 이러한 면모가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거기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 여성들은 이제 새로운 강인함으로 밑받침 되고 보강되어야 한다. 적극적이고 독립적인 성격을 의식적으로 개발하고 뱃심을 키워야 한다.. 그렇게 해야지만 이른바 “여성다운 면모들이 또 다시 왜곡되거나 엉뚱한 식으로 착취되는 일 없이 온전하게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시몬드 보부아르의 말대로 “인간은 여자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그렇게 길들여진다.”
결국 스스로의 온전한 삶을 위해서는 적극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위한 여성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으로 인해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여성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래서 사랑과 자유, 연민과 욕망, 가정과 직장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할 때, 스스로의 삶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 되기를 바란다.
스스로의 생각과 말과 행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아주 작은 차이>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