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선다는 것/책이야기

'평온해서 감사한 아름다운 일상'

이끼장미.. 2020. 12. 12. 18:37

'평온해서 감사한 아름다운 일상'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주관적 글쓰기)

 

제출일자 : 2017. 10.28

제 출 자 : 김순영

 

불안하고 불안정했던 나 생의 첫 과도기 사춘기, 그 불안한 시기가 찬란한 순간이라는 생각을 그땐 하지 못했다. 모호한 미래는 늘 불안했고, 초조했고, 그 시기가 어서 지나가기를 바랬으니까.... 현재를 즐긴다는 생각은 미쳐 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그 느낌이 서러워 많이도 울었다. 그럴 때면 곁에서 눈물 닦아주고 위로해 주던 엄마가 있었다. 를 믿어주는 세상의 단 한사람, ‘엄마의 한없는 위로와 격려 덕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꿈꾸었고, 그 꿈을 이룬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꿈꾸었던 교사가 되어 교단에 섰다. 아이들도 사랑스럽고 일도 재미있었다. 처음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혼자 생활하는 것이 조금 힘겹긴 했지만 견딜만 했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남자친구와의 연애도 순탄했고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는 봄날 같았다.

 

내 삶의 봄날 같던 어느 날, 10년을 사랑하고 만난 그 사람과 결혼을 했다. 처음으로 사랑했던 그 사람과 앞으로 영원히 함께하자는 그 약속,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었다. 그렇지만 결혼은 나를 또 하나의 삶의 이행대로 옮겨 놓았다. 아내로 , 며느리로 급작스레 주어지는 역할들이 어색했고 불편했다. 그 모호하고 불안정한 순간들이 내 안에서 해결되기도 전에, 나는 엄마가 되었고, 내 삶의 가장 커다란 과도기를 맞았다. 내 삶이 송두리째 흔들거리는 느낌이었다.

 

내가 미래에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알지 못했고, 그 모호함은 나를 몹시도 두렵게 했다. 엄마의 두려움과 불안에도 아랑곳없이 아이는 엄마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런 녀석을 온전히 사랑해 주지 못한채, 내 불안을 숨기고 성급히 복직을 했다. 변화의 시기임을 미처 깨닫지 못한 나였기에, 기존의 사고체계로는 넘어질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26개월부터 어린이집 등원을 시작한 녀석은 자주 아팠다. 회식 자리에 아이를 데리고 간 다음날은 더 아팠고, 아픈 녀석을 등 떠밀고 출근하며 많이도 울었다. 퇴근 후에 녀석을 품에 안으면 그 작은 녀석이 더 깊이 품을 파고들어 엄마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이 덕분에 나는 비로소 내 삶의 과도기를 대면하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사고체계로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현실의 벽이 느껴졌다. 지금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갈 것인지 새로운 해답을 찾아야 했다.

 

그 해답을 위해 나는 자신에게 수없이 질문했다. 행복한 내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나 자신만을 위한 삶은 행복할까?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면 아무런 바램도 없이 아이만 바라보며 살 수 있을까? 그럴 자신도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선되어야 할까? 결국 함께하는 지금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그 생각으로 나는 집과 학교를 오고가며 내가 품은 아이와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만났다. 좋은 엄마이고 싶었고, 좋은 선생님이기를 꿈꾸었다. 그러나 집과 직장을 오가며 에너지가 고갈되는 날은 여지없이 아이에게 온갖 부정적 감정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렇게 이어지는 나날들, 어느날 바라본 아이의 눈에서 엄마를 간절히 기다리는 슬픈 눈빛을 발견하던 날, 나는 무너져 내렸다. 내 삶의 변곡점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고, 그렇지 않고서는 행복할 수 없는 나인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미친 듯이 엄마공부를 시작했다. 육아서에 가장 집중했던 시기였다. 그때 했던 공부들은 나를 한없는 회한에 빠지게 했다. 엄마가 전부였을 그 어린 녀석을 온전히 품어주지 못한 채, 온갖 불안과 분노를 퍼부었던 스스로를 뼈 아프게 자각했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는 아팠지만, 남아있는 아이의 유년시절은 온전히 품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늦었지만 아이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때 했던 결심은 하나, ‘아이와 함께하는 지금, 최선을 다해 사랑하자.’ 그것뿐이었다. 아이가 원한다면, 허락된 엄마의 시간을 내어 주리라 결심했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지낸지 올해로 4년이 되었다. 7살 마지막 유년시절을 함께하며 마음껏 자유롭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마음을 다했다. 어린이집 하원 후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았던 기억이 오롯이 아이의 가슴속에 남았다. 초등학교 입학 후부터 3학년이 된 지금까지 학원으로 아이를 내몰지 않고 충분히 놀이밥 먹고, 책과 함께 커갈 수 있도록 마음을 썼다.

 

휴직 기간 동안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놀이밥 마중과 베드타임 스토리 시간이었다. 땀 흘려 뛰어노는 아이의 놀이밥 마중을 하며 놀이가 삶이고 삶이 놀이인 아이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삶은 언제나 풀어야 할 숙제라 여겼던 엄마에게 아이는 축제같은 삶을 가르쳐 주었다. 날마다 아이의 놀이밥 마중을 하며, 엄마는 행복했다.

 

한글 읽기 독립 이후 잠자리에서 책 읽어주기도 휴직 기간에 다시 시작했다. 예전에는 한글 익히기를 위한 목적의 책읽기였다면, 지금은 아무런 목적도 바램도 없었다. 그저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읽고 이야기 나누는 교감의 시간이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런 엄마에게 아이는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안겨주곤 한다. 함께 책을 읽으며,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을 배우고, 아이의 감수성에 동화되어 가는 느낌이 든다.

 

2014, 내 삶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당시의 나는 교원 연구년 선정, 여러 교육청의 걍연 요청, 대학원 석사 논문 pass, 대학원 박사과정 도전 등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 그대로 내달리면 세상이 인정하는 무엇이 될지도 모를 그 순간, 나는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홀연히 휴직을 했다. 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일 것이지만, 또 다시 같은 후회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엄마를 간절히 바라는 아이의 유년시절은 그리 길지 않음을 상기했고,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돌아와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처음의 나는 아이에게 엄마의 시간을 내어준다고 생각 했었다. 그러나 지난 시간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이가 엄마에게 너무나 많은 선물을 돌려 주었다. 아이와 함께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은 내 삶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이 되어주었다. 최선을 다해 사랑했고, 후회 없는 선택을 했다.

 

이제 4달 후면 아이는 엄마 없이 스스로의 삶을 견뎌야 하는 시간으로 이행해 갈 것이다. 지금까지의 사고체계로는 넘어설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부딪치게 될 것이고 어쩌면 최초의 삶의 과도기에 들어서게 될지도 모르겠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그런 녀석을 성급히 도와서도 안 되고 도울 수도 없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엄마도 아이도 서로의 삶의 과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불안해하지 말아야 겠다. 삶의 모든 시기가 저만의 가치가 있는 것처럼, 지금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하고 본질적인 것을 깊이 경험할 수 있도록 삶의 물살에 스스로를 맡겨야 겠다. 더불어 로베르트 제탈러의 소설 <<온전한 삶>>의 주인공 에거처럼 ,낙천적 생의 감정인 신뢰와 미래에서 오는 용기인 희망을 바탕으로 삶을 수용하고 나와 관계된 생명체를 사랑하며, 생명력을 바탕으로 새로워지고 발전해 나가는 삶을 살고 싶다.

 

남은 시간동안 후회 없이 사랑하고 싶다.

그 시간들이 삶의 이행대를 헤쳐 나갈 힘을 선물해 줄 것임을 믿는다.

사랑한다 여은아.

내일은 더 많이 사랑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