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제3편 팔일 - 1,2,3
논어 (슬기바다 #01) (80~82쪽)
<<엄마필사>>
논어
3편 팔일
1. 공자께서 계씨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뜰에서 천자인 양 여덟 줄로 춤추게 하다니, 이것을 참고 봐줄 수 있다면 그 무엇인들 참고 봐주지 못하겠는가?
2. 노나라의 세도가인 세 대부의 집안에서 제사를 지낸 후에 시경의 옹을 노래하면서 제기를 거두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제사를 돕는 것은 제후들이요, 천자께서는 장엄하시도다라는 가사의 노래를 어찌 세 대부들 집안의 사당에서 쓰는가?"
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사람이 되어 인하지 못하다면 예의를 지킨들 무엇하겠는가? 사람이 되어서 인하지 못하다면 음악을 한들 무엇하겠는가?" Lucy, 엄마 공동 best
<<마주 이야기>>
(번갈아 음독하기 -> 묵독하며 베스트 구절 찾기 -> 이야기 나누기)
엄마 : 이번에도 같은 구절을 골랐네. 루시는 왜 그 구절이 좋았어.
루시 : 응. 예전에 엄마가 이야기 해준게 생각이 났어. 엄마가 인(仁)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거라고
했잖아.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인'은 두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생각해 보니까 두
사람을 이어주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정직과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
엄마 : 정말 그렇겠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데 그 사람이 진실하지 않으면, 그 관계는 오랫동안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 같아. 엄마도 생각해 보면 오래 오래 만나고 싶은 사람은 솔직 담백한 사람들이었거든.
그래서 루시의 오늘 교훈은 뭐야?
루시 : 응, 그래서 내 교훈은 '인(정직, 믿음직)한 사람이 되자'로 할꺼야.
엄마 : 그래, 루시가 인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엄마가 응원할께.
이제 엄마 이야기 할께.
엄마가 왜 3장을 베스트로 정했냐 하면, 사실 1,2장은 읽어봐도 잘 공감이 되지 않았어. 공자가 말하고자
하는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거야. 그런데 3장을 읽다보니 무릎을 탁~ 치게 되더라구.
그래서 이 구절을 골랐어. 공자는 사람간의 관계에서 '인'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는데, 공자가 전하고자
하는 인의 경지까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엄마 입장에서 생각해 봤어.
엄마가 그동안 만나왔던 사람들을 되돌아 생각해 보면, 엄마는 '솔직 담백'한 사람들이 좋더라고.
잘 보이고 싶어서 자신을 감추는데 급급하기 보다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당당하게 이야기 하고,
자신의 세계가 뚜렷한 사람이 좋았어. 엄마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해.
루시 : 그래서 엄마 교훈은 뭐야?
엄마 : 응, 그래서 엄마는 '인(온전)한 사람이 되자.'로 정할래.
결국 온전하다는 건 자기 자신에게 정직한 거니까, 루시 이야기와 비슷할 것도 같네~
우리 내일은 정직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해 보자
<< 루시의 메모 >>
내 교훈 : 인(정직, 믿음직)한 사람이 되자.
엄마 교훈 : 인(온전)한 사람이 되자.
<< 엄마 생각 >>
2주 전에 글벗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함께 글 쓰고 낭독하고 지지하며, 자신의 삶의 파이를 키워가던 사람들......
저마다의 힘든 시기를 함께하며 지금까지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서로 분주한 일상들 덕분에 자주 만날수는 없지만, 오랜만에 만나도 늘 한결같은 사람들이다.
내가 이 글벗들을 좋아하는 이유,
저마다의 온전함을 지켜내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카페를 운영하는 '놀다'
그녀인들 생계를 위해 이 모든것들을 집어 던지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을 터였다.
수익을 얻지는 못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얻었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 그녀가 부러웠다.
오랜동안 마을 공동체를 일구며 사람들과 함께한 그녀의 커리어 덕분에,
안정적 수익이 보장된 좋은 곳에서 여러 제의가 들어왔다고 했다.
'아직은 하고 싶은 일 하며 살고 싶어서' 거절했다는 그녀, 너무 멋지다.
마을카페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소모임을 꾸리고,
더 따뜻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대학원을 다닌다.
그녀의 삶이 누구보다 빛나는 이유,
'온전한 자신'을 알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sera'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를 키운다.
건강상의 이유로 교육의 권리를 잃어버린 아이를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고립되어 있는 아이들과 엄마들에게 손을 내밀어 함께하고 ,
그들의 어려움을 모아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일,
쉽지 않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그 일에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그녀의 삶,
멋지고 아름다웠다.
'나비'
아이 둘을 대안학교에 보내며 마을 공동체 일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대안학교를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공교육'이 해결해주지 못한 문제들,
아이들이 조금 더 따뜻하고 온전하게 성장해 갈 수 있도록,
과감한 결단과 행동으로 옮겼다.
솔직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는 그녀,
대안학교의 어려움을 온몸으로 경험하면서도,
자신이 선택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
그 용기와 결단력이 부럽다.
'HJ'
글모임 하며 대면하기 가장 힘들었던 글벗.
내가 그토록 뼈아프게 후회하던 과거의 일들을,
고스란히 견뎌내고 있는 그녀 앞에서 무너지곤 했다.
젖먹이 아이를 안고 글모임에 온 그녀,
기꺼이 아이에게 시간을 내어준 엄마, 그녀가 부러웠다.
그렇지 못한 내 자신을 책망하며,
글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면 참 많이 울었다.
그렇게 3년을 아이와 함께하고, 복직 후 분주한 일상을 산다.
최근에는 등원 도우미를 구했다고도 했고,
아침 준비는 어찌해야 하냐며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잘 해내고 있다고 등 토닥여 주고 싶은 그녀, 여전히 눈부시다.
그리고 '나'
돈을 쫓는 일을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용기있게 포기하지도 못한다.
아이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일 하나도 두려워하다 지각을 했다.
'하고 싶은 일'에 마음을 쓰기보다, '해야 하는 일'들이 늘 앞섰다.
그런 내가 용기내서 선택했던 삶,
'루시곁으로 돌아온 일'이다.
두려움이 밀려오는 시간을 견디기 위해,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들에 마음을 썼다.
아이와의 시간에 몰입했고, 그 시간을 글로 썼다.
그 시간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되었다.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사부님은 이제 더 이상 질문하지 말라고 했다.
의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써나가라고 했다.
그래야 겠다.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쓰다보면 내가 누구인지 명확해 지겠지.
내가 아닌 것들에 부러워하지 말고,
'온전한 내'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열심히 써나가야 겠다.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