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말랭이
2021.03.25 am 5:00 시작
내 무의식속 가장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몇살때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의 나는 머리가 아팠고 그걸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만큼 어렸다.
내가 아프다 아무리 표현을 해도 모두 알아듣지 못했던 그때,
엄마만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해했던것 같다.
그리고는 그 따뜻한 손으로 나의 이마를 짚어주었다.
엄마의 손은 따뜻했고, 한없이 부드러웠다. 나는 엄마 품을 파고들어 한없는 위로를 받았다.
입맛이 없었던 나를 위해 엄마는 밥을 물에 말아 먹여주었다. 다른 반찬은 혀로 밀어내던 내가
무말랭이는 오물거리며 삼켰다. 엄마 품에 안겨 물에 말은 밥을 먹었던 기억,
그것이 엄마가 해준 음식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이다.
그 후로도 엄마는 내가 아플때면 무릎에 앉혀 품에 안고 밥을 먹여주었다.
아무리 열이 나고 아파도 엄마 손이 닿으면 거짓말처럼 금세 낫곤 했다.
열이 자주 나고 잔병치레가 많았던 어린 시절이 지나고 나도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고 나니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아픈 시간이 많다.
마음이 쓸쓸한 날에는 어린 시절의 나처럼 입맛도 없어지고 그 옛날의 엄마 품이 그립다.
엄마품에 안겨 어리광도 부리고 한없는 위로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내가 그리워 하는 엄마의 품은, 어쩌면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때보다 길어진 엄마의 우울증은 나의 일상을 뒤흔들었다.
전화를 걸어보지만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안내원의 음성만 나온다.
함께 계신 아빠와도 전화 연결이 되지 않으니 애가 탄다.
가까이 계시지 않으니 멀리서 애타게 수화기 저편의 엄마를 기다린다.
그런 내 마음이 가 닿았는지, 어제 아침에는 전화를 받으신다.
걱정끼쳐 미안하다는 말,
엄마는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출근 잘하고 근무 잘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엄마의 말을 믿고 싶지만 그 말을 믿기에는 엄마가 너무 위태롭다.
엄마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여름밤이면 더위에 잠들지 못하는 엄마를 위해 부채질을 해주시던,
생일이면 새하얀 쌀밥과 수수팥떡을 해주시던,
따뜻한 품을 언제나 넉넉히 내어주시던,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뼈에 사무치는 날에는,
당신을 귀히 여겨준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며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스스로를 보물처럼 귀히 여겨야 강해질 수 있음을 엄마는 알지 못했다.
'엄마의 엄마'처럼 '엄마'의 삶은 언제나 자신보다 남편과 자식이 먼저여야 한다고 배웠던,
엄마의 삶이 나는 늘 안타깝고 애달프다.
엄마가 스스로를 귀히 여기고, 강해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더불어 나의 삶은 '엄마'의 삶과 다를 것이고 달라야 함을 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건강하고 행복한 자신만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음을 지난 시간이 내게 가르쳐 주었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 남편, 엄마, 아빠를 더욱 깊이 사랑해주기 위해서라도,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할 것이다.
오늘 아침은 물에 만 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밥 위에 무말랭이 하나 얹어 오물거리며 힘내야 겠다.
그 옛날 따뜻했던 엄마 품에서 위로받고 위안받았던 그 힘으로,
내 아이를 사랑하고, 나의 어머니를 더욱 깊이 사랑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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