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장미.. 2021. 3. 30. 06:17

2021.03.30 5:39 시작

 

아이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아이의 플룻 레슨 상담을 핑계로 선생님과 약속을 잡았다.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가슴에 묻어두고 레슨용 플룻을 어떻게 구입하면 되는지를 물었다. 

시간을 조율하고 플룻을 주문하고 이야기가 마무리 되던 차에  문득 물었다. 

 

- 선생님, 그런데 저도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요. 

 

그렇게 마흔 여섯의 나는 피아노 레슨을 시작했다.

처음 레슨을 가는날 내 마음은 설레이면서도 두려웠다. 새로운 배움에 한발 내딛는 두려움은 어른이 되면서 더 커진것 같았다. 나는 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던걸까?

 

어린시절 나는 음감이 좋아 풍금도 곧잘 치고 노래도 잘했다. 그런 재능을 알아봐준 선생님 덕분에 운동회날 1학년 율동을 위한 노래를 녹음했던 기억도 난다. <귀여운 꼬마> 노래를 수십번 불렀고, 그 노래에 맞추어 친구들이 율동을 하는 즐거움 덕분에 나는 학급에서 풍금을 두들겨 보곤 했다. 배운적도 없는 풍금을 곧잘 쳤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반주가 어려워지고, 피아노 배운 친구들이 하나 둘 늘면서 나는 풍금 반주자 자리를 내어주고 합창단원이 되었다. 합창이란 것이 반주자가 더 중요하고  노래하는 자리가 덜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어린 마음에 반주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도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주산학원에 보냈다. 사는게 팍팍했던 살림살이에 아이 둘을 주산학원까지 보낸 엄마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이야기는 하진 못했다. 슬프진 않았다. 어쩌면 피아노에 대한 열망이 그리 강하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그 후로 나는 오빠를 따라 방학 독서 교실을 열심히 다녔고, 그곳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했다. 어린 동생이 열심히 책읽고 독서록 쓰며 읽고 쓰는 즐거움을 배웠다. 덕분에 나는 읽고 쓰는 기회를 누렸고(어린이 신문 기자 활동) 세상에는 즐거움을 느끼는 활동이 많음을 배웠다. 

 

 중,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간간이 합창부, 문예부 활동을 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고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되었다.

노래를 하거나 글을 끄적이는걸 좋아했지만 간헐적으로 하다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한 아이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어린 나와 만나는 일이기도 했다. 

아이의 성장과 함께 나는 내 아이만한 나와 만나는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했던 내 아이의 어린시절을 아프게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손이 닿을만한 거리에 있었던 따뜻한 엄마 덕분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 아이에게 피아노를 권했던 것은,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 대신 주산학원에 가야 했던 나를 만났기 때문임을

나는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중학교 입학을 1년 앞둔 그 시기, 아이는 미술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마침 인근 중학교의 교육과정에 맞춘 맞춤식 미술 수업을 함께 하자며 친구 엄마가 연락을 했다.

처음엔 하겠다던 녀석이 갑자기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몇번을 권유해 보았지만 여전히 같은 대답을 하는 아이를 보며, 

배우고 싶지 않은 아이에게 권하는 나의 행동을 그만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면 정작 배우고 싶은 사람은 나 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배우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의 미술 레슨비는, 

배우고 싶어하는 엄마의 피아노 레슨비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피아노 레슨'이 이제 1년 하고도 두어달이 되어간다. 

일하면서 배우는 피아노라 바쁠때는 빠지게 되기도 했지만, 바이엘을 마무리했다. 

아이 어릴때 불러주던 '섬집아기'나 '에델바이스'는 곧잘 칠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는 어릴때 좋아했던 'J에게'를 연습했는데, 잘 치진 못하지만 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어제 레슨을 갔는데, 한 엄마가 피아노 레슨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선생님께 들었다. 

늘 꼬마들 사이에서 부끄러운 마음이 되었던 나였는데, 같은 마음을 나눌 벗이 생겨서 든든했다. 

레슨 마치고 잠깐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니 유쾌한 시간이 되었다. 

 

저마다의 마음속에 자리한 과거의 이야기를 묻어두고, 

지금의 나와 마주한 우리는 열심히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간다. 

다시 어린 꼬마가 되어 악보 보는 법을 배우고 손가락을 건반위에 올리고 하나 둘 배워간다. 

연습하고 노력한만큼,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연주를 한다. 

 

그 엄마는 친정 아버님이 위중하셔서 간병을 마치고 온다고 했다. 

스무살을 넘긴 장성한 두아이의 엄마이자, 위중한 친정아버님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위해 시작한 그녀를 응원하는 마음이 된다.

그 마음은 어쩌면, 이제 중학생이 된 딸아이의 엄마이자, 우울증에 시달리는 친정 어머니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위해 시작했던 나를 응원하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am 6:17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아이들의 전유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