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선다는 것/책이야기

내가 교단에 남은 이유

이끼장미.. 2021. 3. 31. 06:20

내가 교단에 남은 이유

그냥, 사람을 읽고

 

누구에게나 한번은 뜨거운 시절이 온다. 미치지 못해 미칠 것 같은 청춘, 저자의 표현대로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불처럼 청춘이 눈부시게 빛나다가 순식간에 끝나버리는 그 순간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청춘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후회가 휘몰아치기 전에 세상이 원하는 선택을 하라던 어른들의 이야기가 어렴풋이 이해되는 나이가 된다.

 

, 이렇게 끝나는 거였구나.’

생각보다 그런 순간이 빨리 와서 당황했다던 그녀, 그 뒤에 후회의 순간들이 장황히 나열되고, 그 후회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삶의 이야기들이 펼쳐지겠구나 감히 짐작했다. 그런데 그 뒤로 그녀의 당당한 고백이 이어진다.

 

16> 그런데 이상한 건 어쩐지 전혀 후회스럽지 않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가슴이 점점 벅차올라서 눈물이 조금 날 것 같았다. 관객이 되어 바라본 내 청춘이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노들이 아니었다면 절대 보지 못했을 것들을 보았다.

 

지나온 시간에 대한 그녀의 열정과 선택이, 만남과 배움이, 성장과 깊음을 만들어 냈음을 당당히 고백한 그녀의 이야기에 단번에 매료되었다. 어떤 삶이길래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이 날 것 같은 눈부신 순간을 만들어 갔던 걸까? 무엇이 그토록 그녀의 청춘을 가슴 벅차게 만들어 버렸을까? 그렇게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득 품은 나는 손에 든 그냥, 사람을 단숨에 읽어 버렸다. 내 삶도 눈물이 날만큼 마음에 들기를 간절히 바랬는지도 몰랐다.

 

요즘 나는 교단에서 인권에 대해, 사회적 갈등과 차별을 해결하기 위한 자세에 대해 아이들과 공부하고 있다. 교과서에 그려진 대한민국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와 행복추구권을 헌법에 명시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국가로 형상화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과의 간극은 너무나 아득하다. 특히나 시설 속 장애인들의 삶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는 2021년 현재에도, 인권의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아픈 시간이었다.

 

국민주권의 원리를 발현하기 위해 선택한 대통령제의 메커니즘을 가르치고, 민주 시민으로 갖춰야 할 시민의식에 대해 핏대 올려 강조해본다. 그러나 엄청난 규모의 국민 세금과 민간자본이 들어간 사업 (박원순 표 매연 굴뚝) 에 대해, 안전성과 환경적 영향에 대한 검증의 부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자유롭고 주체적 존재로서의 가계, 기업, 정부는 언제나 합리적 선택을 하는 덕분에,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은 순탄히 작동됨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한없이 작은 존재로서의 자신(가계)이 거대 기업과 정부의 억압과 통제를 견제하고, 보다 주체적 존재로 행동하기는 요원하기만 하다(845분 단원고에서)

 

교육과정 운영을 위한 시간이 부족해서, 첨예한 갈등 구조를 다루는 것에 대한 부담감으로 제도권 교육안에서 애써 외면했던 사건들을 이야기로 풀어내 세상에 내놓은 그녀의 용기 덕분에 나는 다시 배운다. 사소한 개인의 이야기가 기록되고 전해지면, 그 이야기는 더 이상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며, 우리의 이야기로 환원되고 사회적 문제로 전이될 수 있음을 그냥, 사람을 통해 배웠다.

 

그녀는 교사가 되기를 꿈꾸었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교사로 산다는 것, 그것이 참 힘들고 위험해 보이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스물 세살의 그녀는 자신이 없었고, 방황하던 그때 노들을 만났다고 했다. (노란들판의 꿈 P295p)

 

나 또한 교사가 되기를 꿈꾸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우리 사회에서 교사로 산다는 것만큼 보람차고 아름다운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작고 여린 존재가 교육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꽃피우는 과정을 곁에서 돕는 일은 나를 가슴 뛰게 했다.

 

서로 다른 이유로 그녀는 떠났고, 나는 남았다.

그녀는 그녀의 자리에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을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로 전해주었다. 그것이 그녀가 선택한 일이었고, 그 선택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나도 나의 삶을 되돌아본다. 아이들의 운명을 꽃피우는 과정을 곁에서 돕는 일은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신기루와 같았다. 늘 최선을 다해 보지만 변화를 확인하는 일은 아득하기만 하다. 내가 생각했던 교육이 과연 아이들에게 무슨 의미를 선물하고 있는 것일까? 실상 무력하고 핵심에서 비껴서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그녀의 이야기 그냥, 사람을 읽는 내내 이야기 하나 하나가 날카롭게 내 가슴을 파고 든다. 그녀가 인권 활동의 현장에서 그들과 함께하며 그 사실을 기록하는 사이, 나는 아이들의 눈에 무엇을 보여주려 노력했으며 무엇이 그들의 가슴속에 남았을까? 그 질문이 그냥, 사람을 읽는 내내 내 안에 가득했다. 그리고 나는 그 답을 내 안에서, 내가 있는 현장에서 찾아야 했다.

 

교육 현장을 떠나 삶의 현장으로 들어간 그녀는 그녀가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방식으로 세상과 마주한다. 교육현장에 남아 있는 나 또한 내가 있는 자리에서 세상과 함께할 수 있는 무엇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인권 활동의 현장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하는 그녀가 있기에 그냥, 사람의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교육 현장에 있는 내가 있기에 그냥, 사람의 이야기들이 아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늘 조심스럽다. 섣부른 감정이입이 소수자의 이야기를 고통의 체험학습 교재로 만들어 버릴까봐(259P) 그러나 나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 다시 용기를 내어본다.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함께 해결해 나가는 사회 참여 수업을 실천한 지 10여 년이 되었다. 아이들이 그냥, 사람속의 이야기들도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할까 한다. 이 이야기들이 작은 마중물이 되어 아이들의 마음속에 공감의 일렁임을 불러 일으키고, 그 일렁임이 무언가를 하고 싶어지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아이들을 돕는 내가 되고 싶다.

 

그것이 내게 그냥, 사람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준 저자에 대한 작은 보답이 될 것이고, 내가 존재하는 현장에서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고 연대이며 사랑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