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삶
2021.04.18 28일차.04.18 28일차
아이의 '줄넘기 대회'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연습을 위한 주말 줄넘기 시간을 알리는 문자가 왔다.
주말에 아이의 외출은 드문 일이라, 아이도 즐겁고 엄마도 신난다.
엄마 혼자 있게 될 시간에 무엇을 하면 좋을까?
마감이 다가오는 원고를 쓰면 좋겠다는 생가글 했다.
아이를 배웅해주고 탁자에 앉으려는데, 방에 있던 남편이 나왔다.
줄넘기 간 아이에게 뒤늦은 배웅을 해주고는 거실에 있던 TV를 켰다.
예능 프로그램을 넋 놓고 보며, 2주일은 묵혀둔 베란다의 빨래를 가지고 들어왔다.
나의 평온한 일상을 침범당한 느낌에 순간 기분이 상했다.
남편은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온가족이 모여 TV를 보거나, 손님을 접대한 공간으로서의 '거실'의 개념이 남편에겐 당연했을 것이다. 그러나 온전히 지낼 나의 공간이 없는 지금 상황에서 거실을 함께 사용하는 공간으로 내어주기 싫었다. 아이와 함께 할 때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가 없는 지금 이시간은, 나 혼자 글을 쓰는 나만의 공간이길 바랬다.
빨래를 주섬주섬 걷어와 산처럼 쌓아 놓는 남편에게 한마디 했다.
- 내 방에 들어와 TV를 켤때는 허락을 좀 받으면 좋겠어.
나도 내 스케줄이 있거든.
- 여기가 어떻게 당신 방이야. 거실이지.
끝나지 않는 우리의 방타령에 에너지를 쏟기 싫어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나니 조금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런데도 자꾸만 남편에게 날 선 마음이 된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남편이 말한다.
- 아까 병원 다녀오다 식자재 마트에 들렀을때 아이가 뭐라했는줄 알아?
- 뭐라 했는데?
- 아빠 빨리가자. 내가 수학 안하면 엄마가 나를 죽일꺼야.
- 그래서 자긴 뭐라고 했어?
- 빨리가자고 했지.
엄마가 너 때문에 얼마나 애쓰고 헌신하는지를 말해주지 않는 남편이 야속하고,
차 마시고 오느라 늦는다는 남편 때문에 혼자있을 녀석이 마음에 쓰여 피아노 레슨도 빠지고 들어온 나만,
약이 바싹바싹 오르고 화가 났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이런 삶을 살아왔던 겆기? 속이 상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누구도 내게 강요한 삶은 아니라고 남편은 말했다.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인 아이를 너무 오랜동안 홀로 내버려 둘 수 없는 나는,
퇴근후에도 아이의 저녁을 챙기고, 공부를 봐준다.
가끔 내가 더 늦어지는 날에 아이 공부를 맡겨둘라치면, 남편은 자기 방에서 낄낄거리며 TV를 보다가 채점만 해준다.
그마저도 안해주고 엄마 오기를 기다리는 경우도 많았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지? 억울한 마음이 들면 날선 마음이 된다.
우울해지고, 나도 이제 내 삶을 찾아 떠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편은 물었다.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삶,
행복하게 살고 싶지.
내가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며, 자유롭게 말이지.
해야 하는 일들은 좀 걷어 내고, 책임져야 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롭게 걸어가는 내가 되고 싶지.
산더미처럼 쌓인 설겆이 앞에서 온갖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나를 죽이며 살고 싶지는 않지,
아이를 더없이 사랑하지만, 그 아이에게 엄마의 삶을 되돌려 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
아이에게 좋은 엄마이고 싶고, 내 삶에도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고 싶지.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해갈수록 여러가지 삶의 영역에서 위축됨을 느낀다.
눈이 침침해지고, 체력이 예전같지 않다.
지금 감당하고 있는 업무까지는 가능하겠지만,
그토록 격멸했던 선배들의 무능과 무기력이 그들도 원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 갈때,
나 또한 후배들에게 그런 초라한 모습으로 남겨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힌다.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이라도 노력해보려 하지만,
늘 아이가 걸린다.
아이를 보살펴주는 일로부터 이제는 한발 떨어져 관망하는 남편이 미워지고
자신이 원하는 꿈을 찾아 하나씩 이뤄가고 성취해내는 것을 보면,
심술이난다.
공부도 더 잘했고, 임고도 먼저 붙었고, 연구년도 먼저 되었고, 더 유능했던 내가,
아이 때문에, 남편 때문에 발목 잡힌 느낌이 들때,
그저 품위유지나 하는 들러리로 밥벌이를 하는 느낌이 들때,
나는 절망한다.
남편은 말했다.
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진로상담대학원 진학을 하라고 했다.
아이는 잘 커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젠 엄마의 부재 때문에아이가 비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사회화된 아빠와,
그런 선택을 할 수 없도록 사회화된 엄마,
둘의 의견은 결국 좁혀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를 마치고 피아노 연습을 하러 딸 아이 방에 들어갔다.
'너를 위해'를 연습한다.
어린시절 그렇게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
늦게라도 배워서 좋다는 마음도 잠시,
배우지 못해 아쉬운 감정이 나를 괴롭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