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은 때란 결코 없다
1. 만일 너무 늦지 않았다면, 나는 그림을 배우고 싶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그림에는 자신이 없었다.
글로 표현하는건 어렵지 않았는데, 하얀 도화지가 앞에 놓여지면,
얼음이 되어버리곤 했던 나였다.
그러다 처음으로 5학년이 되어서야 사생대회에서 상을 한번 받았다.
상을 받기 위해 필요한 규칙같은걸 발견한 느낌이랄까?
그 기법을 잘 기억해 적용해 보니, 상을 받는것은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자유로운 표현으로서의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나의 미술적 감각은 끝이 났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여전히 그림은 어렵다.
하얀 도화지를 가득 메우는 일은 인생을 채워가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
그런 내가, 만일 너무 늦지 않았다면, 마음으로 그리는 법을 배우고 싶다.
2. 만일 너무 늦지 않았다면, 나는 피아노를 더 오래 배우고 싶다.
마흔 여섯이 되어서야 딸아이의 손을 잡고 피아노 배우기를 시작했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벌써 9달째로 접어든다.
바이엘부터 시작한 내가, 지금은 바이엘 4권을 진행중이다.
어려운 곡을 만나면 익숙해 지는데 제법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초보자가 되어 선생님께 손가락을 맡기고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선생님께서는 어른은 바이엘 이후 체르니로 들어가지 않고,
노래 연주로 바로 들어가게 될거라고 하는데,
사실 나는 제대로 체르니를 배우고 싶기도 하다.
배움에는 늦은때가 없다는 말을,
나는 피아노를 배우며 몸소 체험해 가고 있다.
피아노 덕분에 다른 악기를 배우는 일에도 이제는 자신감을 조금 갖게 된다.
3. 만일 너무 늦지 않았다면, 나는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에게 글은 늘 익숙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할때, 그것이 무엇이던지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글이 없었더라면 그 힘들고 아픈 시간들을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었을까?
아득함이 든다.
그렇게 애틋한 글쓰기를,
하지 못하고 지나간 날들이 이어진다.
자꾸만 목에 걸린 가시마냥 답답하고 따끔거린다.
내 안의 무언가가 시원스레 표출되지 못하는 답답함이 있다.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소중한 글쓰기,
글쓰는 사람이 된다는 것,
너무 늦지 않았다면, 그래서 삶이 허락한다면, 그런 삶이 내것이 되면 좋겠다.
4. 만일 너무 늦지 않았다면, 나는 대학원에 가고 싶다.
나는, 누구보다 배움에 대한 갈망이 강하다.
석사까지 받고 박사 과정을 들어가지 못했다. 석사졸업을 하고 나는 돌연 휴직을 했으니까...... 아이의 유년시절을 빼앗으면서까지 학위를 받을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늘 배움에 대한 목마름이 크다. 언제쯤 되면 아이로부터 자유로운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이제 초등학교 6확년이 된 아이는, 대학원 진학을 앞두었던 그때보다는 훌쩍 자랐다.
그때 대학원 대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선택했던 나를 후회하진 않는다.
그 시간은 내가 살고 싶은대로 살았던, 가장 유일한 시간이었고,
그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엄마의 도움이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그때가 되거든,
그때는 내 공부를 마무리 하고 싶다.
5. 만일 너무 늦지 않았다면, 혼자만의 버킷리스트(100)를 실천하고 싶다.
생각해보니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다. 늘 의존적인 사람이었따. 혼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일도, 영화를 보고, 산책을 하는일도, 내겐 생경한 경험이었으니까......
혼자일 때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고, 내면의 은밀한 탐색이 가능해진다. 나를 알아가기 위해 너무 늦지 않았다면, 혼자하는 나만의 시간들, 도전해보고 싶다.
혼자 밥먹기, 혼자 여행하기, 혼자 등산하기 등등....
아티스트 데이르토 하나씩 도전해 볼 계획이다. 1년 48주, 2년이면 96주, 3년이면 혼자서 해본 100개의 경험들이 쌓일 것이다. 그 경험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