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말들』 리뷰- 쓰는 고통, 안 쓰는 고통
무엇이든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던 때가, 내게 있었다.
내가 사라져 버릴까봐 두려웠던 그때, 일상을 망가뜨리는 일들이 자꾸 일어나던 그때, 얼마나 견뎌야 어른이 될까 싶어 숨죽이며 눈물을 흘리던 그때, 그렇게 주저앉고 싶지 않았던 나는, 글을 썼다.
글을 쓰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 썼다.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린 아이가 가여워 퇴근 후 아이가 잠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아이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조용히 빠져 나올라치면 녀석은 그 틈을 주지 않고 울면서 거실로 뛰어나왔다. 그러기를 수차례, 결국 아이 잘 때 자고 새벽녘에 일어나 글을 썼다.
그랗게 새벽불 밝혀가며 썼던 글은, 내 삶을 돌아보는 글은 아니었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세상에 나를 드러내는 글을 쓰며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를 두려워 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완성해 제출한 ‘연구보고서’ 덕분에 나는 ‘교원 연구년’을 선물 받았다. 내 존재를 인정받은 것 같은 가짜 희열에 마음을 빼앗긴 시절이었다.
연구년을 맞이하면서 내가 가장 정성을 들인 시간은 독서와 글쓰기였다. 아이에게 내어주어야 할 시간을 빼앗지 않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했을테니까......
독서를 하면서 다양한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다독으로 작가가 된 사람, 아이를 잘 키워 작가가 된 사람, 전문성을 살려 작가가 된 사람, 글재주가 뛰어나 작가가 된 사람......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독을 하면서 생각이 많아졌고,그 생각들을 어떻게든 써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안의 생각들을 써 나가면서 책을 통해 내 삶을 비추어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2015년 ‘자기 발견’을 위한 독서와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한 번도 던져보지 못했던 질문을 나에게 건네며,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내 생애 가장 치열하게 읽고 썼던 시간들이다.
2016년 작가가 되기 위한 내게 세가지 질문이 남았다. ’왜, 무엇을, 누구를 위해 쓰고자 하는지‘에 대해 답해야 했다. 쓰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함으로 죽어가면서도 시를 써야 했던 영화 ’동주‘속의 윤동주 시인의 삶을 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내게 그런 절박함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했다. 그 질문에 답하며 나는 매일 글을 썼다.
육아휴직 중이었던 그때,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던 그때, 전문성을 발휘할 수도 없었던 그때, 세상에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글은 무엇이었을까? 그때의 내가 쓸 수 있는 글이라고는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뿐이었다. 낮에는 아이의 놀이밥 마중을 하고, 저녁에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기록했다. 그렇게 나는 매일 글을 썼다. 아이와 함께한 일상을 쓴다지만, 글은 결국 스스로를 향해 있음을 알았다.
2018년, 4년의 공백을 뒤로하고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두려움은 일터를 떠나올 때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돌아갈 때에도 여전히 따라왔다. 아이가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싶은 두려움, 후배들에게 뒤쳐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쓰지 못하는 날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쓰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아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무엇을 써야 할지 알지 못하는 두려움, 더 많아진 두려움과 마주하며 2018년을 치열하게 살았다.
2019년 지금의 나를 본다. 쓰는 날보다 쓰지 않는 날이 더 많아졌다. 읽는 날보다 읽지 않는 날이 더 많아졌다. 나이가 들어 체력도 부치고, 노안이 왔는지 눈이 침침해 진다는 어줍잖은 핑계를 들이대어 보지만, 유일하게 나를 돌아보는 시간인 글쓰기 과제도 제 시간에 못 올리는 내가 참 못났다.
돌아가고 싶다.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그때로, 왜 써야 하는지 알고 싶었던 그때로, 무엇을 써야 하는지 알았던 그때로, 누구를 위해 쓰고자 했는지 고민했던 그때로, 매일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았던 그때로, 녀석을 탓하기 전에 엄마를 되돌아보려 노력했던 그때로, 더 많이 사랑해주기 위해 노력했던 그때로......
그런 내가 되기 위해 글쓰기 책 한권을 읽어본다. 『쓰기의 말들』의 한 구절을 되뇌어 본다.
그는 1945년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와 2년 뒤 『이것이 인간인가』를 발표하고 마지막 책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내는 동안 르포르타주와 소설 등 여러 권의 책을 남겼다. 그의 고백대로 ’인간에 대한 지칠 줄 몰랐던 관심‘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작업니다. 쓸 수도 없고 안 쓸 수도 없는 딜레마에 놓인 한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한다. 쓰는 고통이 크면 안 쓴다. 안 쓰는 고통이 더 큰 사람은 쓴다. - 은유, 쓰기의 말들, p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