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선다는 것/책이야기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리뷰

이끼장미.. 2020. 10. 28. 23:36

 

 

사랑이 무엇인지 미처 알지 못한 스무 살, 나는 대학에 들어가 만난 같은 과 동기와 연인이 되었다. 처음부터 연인이 되어야겠다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남자 동기가 한명이라 그저 혼자서 밥 먹고 외로이 지내는 그 친구가 밥 먹을 때 함께 있어 주었던 것이 우리 관계의 시작이었다.

 

31> 사랑은 약점에 관한 것, 상대방의 허약함과 슬픔에 감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그 약점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이 없는 시기에 그렇다. 연인이 위기에 빠져 낙담하거나 어찌할 줄 모르고 우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그들이 여러 가지 장점을 갖고 있지만 격원할 만큼 천하무적은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하게 된다. 그들 역시 혼란스러워하고 망연자실 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깨달음을 통해 우리는 지지자라는 새 역할을 부여받고,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덜 부끄러워하게 되고, 아픈 경험을 공유하면서 그들과 더 가까워지게 된다.

 

함께 밥을 먹고 수업을 들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 이야기들 속에서 상대방의 허약함과 슬픔이 조금씩 내비쳐 지는 모습들을 보았을 때, 그 슬픔에 감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을 시작했다.

 

10년간의 연애기간동안 우리는 치열하게 싸웠다. 서로 다른 삶의 여정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통찰하기에는 우린 너무 미숙했다. 그렇지만 서로를 신뢰했고, 그 신뢰의 기반위에 서로의 이야기들을 풀어 놓았다. 그렇게 10년을 지낸 우리로서는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순진한 마음으로 결혼을 했다.

 

65> 결혼 :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10년이라는 시간이 우리의 간극을 좁혀 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결혼,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한 공간에서 전혀 다른 삶의 여정을 지나온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은 생각지 못한 일상의 문제들이 불거지기에 충분했다. 라비와 커스틴이 경험하는 크고 작은 일상의 문제들이 조금 모양을 달리했을 뿐 우리에게도 일어났다.

 

79> 협상을 위한 인내심이 없으면 비통해진다. 원인도 잊은 채 화가 나는 것이다. 잔소리를 하는 쪽은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이야기를 끝내려고만 하고, 잔소리를 듣는 쪽은 자신의 반발이 합리적 반론이나 그도 아니면 가엾고 용서 받을 만한 성격상의 결함에서 나온 것임을 더는 설명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양 당사자는 그들에게 똑같이 지루하기만 한 이 문제가 그냥 지나가기만을 바란다.

 

그렇게 10여년을 함께하고서야 그런 행동들을 이해한다는 허울을 씌우고, 바꾸려하기를 포기했다. 포기 이후에 다시 평화가 왔다. 결혼 후 3년을 주말 부부로 지내다 합가하면서 아이를 가졌고, 기다리던 아이가 태어나면서 우리의 결혼생활은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다.

 

143> 부부는 몇 달 동안 고요한 전쟁을 치르며 지금 정확히 뭘 해야 할지 생각한다. 자신들의 삶에서 겪는 어려움들을 잘 아는 그들은 이 사건을 모든 것을 아주 세세하게 처음부터 바로잡을 기회로 간주한다...... 살면서 그 무엇도 이토록 염려했던 적이 없다.

 

146> 이곳에 와준 그녀(아이)가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 사랑이란 개념을 변화시킨다. 그들은 정작 중요한 것에 대해 지금까지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를 깨닫는다.

아이들은 결국 나이가 몇배나 많은 사람들에게 예상치 못한 선생이 되어-그들의 철저한 의존성 자기중심주의, 연약함을 통해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랑에 대한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한다. 이 사랑은 상호 호혜를 강렬히 원하지도 성급하게 후회하지도 않고, 타인을 위해 자아를 초월하는 것만을 진정한 목표로 한다.

 

아이는 더없이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잘 알지 못했던 순간들, 지나고서야 그 순간들이 내게 준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힘든 시간들을 거치며 우리는 치열하게 싸웠다. 똑같이 일하는 엄마, 아빠이니, 육아도 똑같이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나와 아이 곁에는 엄마가 있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배우자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서로의 문제를 내면 깊이 감춰 두었다. 어느 누구도 용기있게 서로의 아픔과 상처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그런 나의 온갖 분노들이 쏟아져 내린 어느날, 그 분노를 고스란히 견디고 있던 작고 여린 아이의 눈물, 그 순간이 내게 너무 깊이 박혔다.

 

147> 우리는 장점에 대한 감탄이 아니라 약점에 대한 동정, 즉 인류 모든 구성원에게 공통으로 존재하고 한때 나 자신의 것이었고 결국 나 자신의 것으로 되돌아오는 그 취약성을 동정하는 사랑으로 인도된다. 자율성과 독립성을 늘 지나치게 강조하고 싶어하는 와중에 이 무기력한 피조물은 아무도 결국은 자력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인생은 문자 그대로 사랑하는 능력에 의지한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아이에게 다하지 못한 사랑을 위해 나는 내 삶의 시간속에서 잠시 걸어나와 아이와 함께했다. 그 시간들은 진정한 사랑을 위한 시간이 되었다. 부족했던 엄마로서 더 깊이 사랑해주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나를 만났다. 내 안의 아픔과 상처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고, 더불어 배우자의 아픔과 상처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었다.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아이를 더욱 깊이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노력이 시간은 서로의 어린 시절에 대한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이 되었고, 그런 서로의 노력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어루만지는 시간들이 되었다.

 

280> 연인의 이해 능력에는 적정 한계가 있고 우리는 언젠가 그 한게에 부딪힌다 하더라도 직무유기라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애석하도록 무능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충분히 헤아릴 수 없으며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게 정상이다. 어떤 사람도 다른 누군가를 정확히 이해하고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다.

 

사랑에 대해 지금도 열심히 배우는 중이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음을 알고 있다. 내 아이가 엄마에게 원하듯이, 나도 그리고 배우자도 여전히 서로의 마음속 깊은 감정을 이해하고 어루만져 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의 영역임을 이제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여전히 내 행동의 이유를 인정하지 못하고 변명한다.

 

280> 성숙은 자신의 광기를 감지하고, 적절한 때에 변명하지 않고 인정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만일 수시로 자신이란 사람이 당황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자기 이해를 향한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은 것이다.

 

4년간 멈춰둔 시계를 켜고 다시 내 삶을 시작했다. 다시는 과거의 내가 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내 안에 얼룪진 부당함, 분노, 이해받지 못한 원망이 뒤엉켜 힘든 시간들이 내 안에 뒤엉켜 흘러가고 있다. 여전히 나는 이해받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사람이구나 싶다. 그런 나를 내려놓고 사랑해 주고 싶다. 아이 덕분에 너무나 많은 선물을 받았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내가 누군인지 알게 되었고, 그 이해 덕분에 배우자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280> 우리는 마치 사랑을 단일하고 분화되지 않은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실은 매우 상이한 두 가지 양식인 사랑받기와 사랑하기로 이루어져 있다. 후자를 실행할 준비가 된 동시에 전자에 대한 우리의 비정상적이고 위험한 집착을 인식할 때 결혼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올해로 배우자를 알게 된지 25, 결혼하지 15년이 된 지금에서야 나는 배우자를 사랑하기로 마음먹는다. 사랑하기를 실행할 준비가 된 지금, 이제야 결혼할 준비가 되었나 보다.

함께하며 우리들의 사랑의 여정을 아름답게 만들어가고 싶다.

 

284> 잘못은 삶이 아닌 예술에 있다. 우리는 갈라서기 이전에 보다 정확한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시작에만 너무 얽매여 있지 않은 이야기, 완벽한 이해를 약속하지 않는 이야기, 우리의 문제를 정상적인 것으로 되돌려 놓고 사랑의 여정에서거쳐갈 길이 우울하더라도 희망적임을 보여주는 이야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