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선다는 것/책이야기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이끼장미.. 2020. 10. 30. 07:11

마흔이 되던 2014년의 나는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교사를 꿈꿔온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고, 그 꿈을 이루었다. 꿈을 이룬 이후에도 나는 줄곧 내가 꿈꿔온 교사로서의 모습으로 교육 현장에서 노력했다. 사랑에 서툰 나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사랑으로 아이들에게 헌신했다. 시간이 흘렀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겼다. 헌신의 마음이 퇴색된 것은 아니었지만, 내어줄 수 있는 시간은 부족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와는 별개로 세상은 나의 사랑과 헌신을 계량했고, 측량해 평가를 내렸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교원능력평가에서 최하등급(B)을 받았다. 그때 내 나이 마흔이었다.

 

32> 공자에게는 불혹의 나이였던 것이 2,500년이 지나 유혹의 나이가 되었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속절없이 질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러나 마흔조차 흘러간다. 무엇을 했단 말인가! 무엇을 이루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흔 살은 성취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시절이라는 점이다. ....... 40대는 이제 특별한 사회적 상징을 담은 단어가 되었다. 그것은 가장 정력적인 나이에 버려진 나이다. 40대의 10년 가운데 어딘가에서 버려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너무 쉽게 버려졌고, 성장의 문턱에서 거부되었으며, 왕성한 상태에서 퇴출되었다. 남아 있어도 그들은 이미 사라지는 사람들이 되었다.

 

거기에 더해 나만 바라보고 두 팔 벌려 기다리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제대로 사랑도 못해준 채 웃자란 녀석을 바라보는데 눈물이 났다. 내안의 무엇이 그렇게 불안하고 두려웠을까? 마흔이 되어서조차도 나는 나 자신을 잘 알지 못했다.

 

그때에도 여전히 나는 나 자신을 아는 것보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마더코칭 강의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책을 추천 받았다.

 

, 이건 뭐지? 왜 내 마음이 이렇게 아프지. 왜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나지......?’

 

이 책을 읽었을 때 솔직한 나의 첫 느낌이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인정해야 했던 마흔의 나를, 과거와 같기를 원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변화해야 하지만 변화를 두려워했던 나를, 한계를 외면하며 기대하고 희망을 품으며 내던졌던 나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 나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한걸음도 앞으로 내딛을 수 없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럼 나는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 안에 물음이 생겼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알고 싶었고, 찾아야 했다.

 

58> 마흔 살이 되어서는 모든 믿음을 쉽게 버리는 함정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저 두 개의 시선, 자신을 바깥에서 보는 시선과 안에서 보는 시선을 공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쓰임을 받으면 애써 일하고, 버림을 받으면 스스로 즐기면 된다. 부름을 받으면 신명을 다하는 것이고, 그들이 잊으면 일상을 즐기며 스스로 벌어 궁색하지 않게 먹고 살면 되는 것이다. 이상과 현실의 사이, 3의 지점,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자리, 스스로를 놀릴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짐만 지고 가는 당나귀의 진지함이 어찌 사람들이 그리는 마흔의 삶이 될 수 있겠는가? 장난도 치고 흐드러진 메밀밭을 달밤에 지나기도 하며, 물레방아간의 뒤로 숨기도 하고, 달콤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제3의 지점이 마흔 살의 자리다. 개혁은 마음을 변형시키는 것이다. 마흔 살의 문제는 결국 가슴과 영혼의 문제다.

 

61> 내게 마흔은 각성의 시기였다........ 40대는 사회적 폐기물이 된 자신을 구해내어 빛나는 삶으로 창조하는 시간이다.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반전이 가능한 시기다......... 마흔 살은 가진 것을 다 걸어서 전환에 성공해야 한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어서 전환에 성공하고 싶었다. 나를 향한 저자의 유혹은 충분히 강렬했다.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고 계발하여 쓸 만한 것으로 발전시킬 수 있음을 증명한 저자의 삶을 닮고 싶었다. 무엇이 되기를 원했던 나를 발견한 이후 글쓰기에 대한 마음을 내려 놓았던 나는, 삶과 글이 일치하는 저자의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내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삶에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다. 엄마로서 아이의 어린 시절 곁을 지키지 못한 채 흘려보낸 시간들에 대한 회한은 생각보다 너무나 깊었다. 아이에 대한 미안함으로 곁에 머무르기로 결심했던 3(연구년 포함 4)은 나에게 있어 속죄의 시간으로서의 의미가 더 컸다. 이 시간마저 아이를 미뤄둔 채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없었다. 그리고 비로소 그것이 유일한 나임을 알게 되었다.

 

123>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정 하나를 만드는 것, 이것이 몇 년 전부터 내 삶의 의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하나가 되었다...... 부모로서 가르침이 있어야 하고, 가르침 너머 함께 즐기고 어울리며 공유하는 친구로서의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아름다운 가정이라는 것이 갈등이 없는 가정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싸우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갈등은 마음이 스스로의 길을 결정하는 순간이다...... 갈등 없는 판단이란 반복하여 익숙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새로운 것에는 갈등이 따라다닌다. 흥분과 두려움 속에서, 세상의 기대와 자신의 기대 사이에서 이익과 마땅함 사이에서, 꿈과 현실 사이에서, 욕망과 절제 사이에서, 편함과 배려 사이에서 우리는 늘 잠시 망설이게 된다.

 

아이와 함께하는 지금의 시간에 몰입했고, 그 몰입의 순간을 글로 쓰며 행복했다. 기록들 사이를 넘나들며 나 자신을 발견했고, 사랑을 배웠고, 행복을 꿈꾸었다. 삶이 글이 되고 글이 삶이되는 경험은, 앞으로의 삶의 전환에 성공할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도 조심스레 품게 했다.

 

다행히 아이는 건강하고 밝게 잘 자라 주었다. 아이와 함께 보낸 4년이, 마흔 네 해의 삶을 통 털어 살고 싶은 대로 살아왔던 유일한 시간이 되었다. 그 시간을 마무리해야 할 즈음, 나는 선택해야 했다.

 

나 자신으로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 떠나온 일터로 돌아가야 할까?

아니면 영원히 떠나 새로운 세상으로 걸어가야 할까?‘

 

결국 나는 떠나온 일터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 결정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지 않기를 바랬다. ’내가 아이들에게 더 이상 줄 것이 없다고 느껴지거든, 밥벌이가 되는 느낌이 들거든, 그때에는 미련 없이 뒤돌아 걸어 나오자.‘ 복직하면서 스스로에게 건낸 다짐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4년의 공백을 뒤로 하고 복직을 했다. 4년의 공백을 극복하는 것이 쉬울 거라 생각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힘들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세상의 물살 속에 뛰어들어 나만의 속도대로 걷고 헤엄쳐 가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과거의 나와 다르다는 것이다. 세상의 속도에 나를 맞추려 하기 보다는 나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늘 생각하며 걸어갈 것이다.

 

200> 나이가 든다는 것은 천천히 삶의 두루마리를 펼치는 것이다. 두루마리의 앞부분, 즉 젊은 시절의 그림이 더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것이 싱싱하고 발랄하며 모험적인 것이라면, 나이가 들면서 짜놓은 인생의 직물은 은은하고 통찰력에 차 있으며 완숙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자연의 부름에 따라 모두 놓아두고 낡은 껍데기만 남기고 떠날 수 있으면 좋은 것이다. 부디 그럴 수 있기를 기다린다.

 

매일 새벽 2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것에 시간을 내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내 삶을 최선을 다해 살고, 그 삶을 글로 쓴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동안 써왔던 글들(아이의 놀이밥을 마중하며 아이에게 베드타임 스토리를 들려주며 주고 받았던 대화들)은 이제 더 이상 쓸 수가 없다는 사실이 조금 슬프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매일 너 댓 시간은 함께 있고 함께 이야기 한다. 모두 바쁘고 서로의 세계 속에 빠져 있지만 공유할 공간과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우리를 이어주고 서로 생각하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무엇을 쓸 것인가? 내 삶의 전환을 위한 시발점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저자가 20여년의 직장생활을 스스로의 키워드(변화)를 품게 되었듯, 나 또한 내 삶속에 숨겨진 키워드가 무엇인지 찾아내야 할 것이다. 잡힐듯 하다가도 이내 되돌아가는 아련한 그것.....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은 명확하지 않지만, 과거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삶에 몰입하고, 그 몰입한 삶을 글로 쓰면서 발견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20187, 가슴을 치며 눈물로 읽었던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5년 만에 다시 읽었다. 여전히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구절들이 너무나 많다. 그 구절들이 내 삶에 예기치 않은 쏘시개 불꽃이 되어 주었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자신의 말을 듣고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속에서 떠날 준비가 된 사람들이라 했다. 후회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한발 한발 내딛으며 걸어가 보자. 그 길이 나에게로 가는 길이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