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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딩 포레스트 후기나로 선다는 것/영화이야기 2020. 12. 21. 20:13
글쓰기 관련 영화로 선생님께 소개받은 「파인딩 포레스트」를 아티스트 데이트를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지난 목요일에 보고 싶었지만 일상에 미루고 미루다가 이번에 보게 되었다. 두고두고 보고 싶은 마음에 영화를 구입하고 다운받아 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편안하게 보기 시작했는데 작품에 몰입할수록 나는 영화를 켜놓은 노트북 앞에 앉아, 주인공들의 명대사들이 쏟아져 나올 때마다 몇 번을 되돌려 적고, 다시보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영화 속 주인공은 16살 흑인소년이다. 아버지의 부재, 가난, 빈민가에서 나고 자란 성장배경 이 모든 것들은 소년을 자신 속으로 파고들게 만들었고, 소년은 자신만의 수첩에 자신의 글을 적고 적고 또 적는다. 그리고 농구를 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런 소년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베일에 쌓인 백발 노인에 대한 친구들의 호기심으로 그 집으로 들어가게 되고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 가방을 놓고 나오게 된다. 가방속에서 발견된 소년의 습작노트를 본 백발 노인은 코멘트를 달아 그 소년의 농구코트로 그 가방을 던지고, 소년은 수첩속 메모를 보고 그를 찾아가게 된다.....
예전 같으면 영화다운 설정이고, 저런 우연은 있을 수 없다고 단정 짓고 바라보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소년의 간절함과 하루하루의 정성과 노력이 천재작가 포레스터와의 만남으로 이끌었을 것이라는 생각, 그것은 줄리아 카메론이 말한 동시성의 발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그것을 돕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는 진실이라는 확신이 든다.......
영화 속 자말은 가난과 함께 시작한 삶속에서 가난으로 인해 가족들이 헤어져 살고 있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형이 주변 환경으로 인해 꿈을 포기하고, 주어진 현실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어린 시절의 가난, 인종차별, 가족이 함께 할 수 없는 상황들은 자말을 충분히 절망 시킬 수도 있는 환경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자말은 열심히 농구를 하고 글을 쓰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디어 낸다. 만약 자말에게 농구와 글쓰기가 없었다면 그 현실의 무게에 짓눌린 자신의 삶을 감당해 낼 수 있었을까? 농구와 글쓰기로 하루하루를 견디어 냈을 자말의 삶의 무게를 느껴보려 애쓰지만 가늠하기가 쉽진 않다.... 그 힘든 삶의 시간들이 자말은 더없이 힘들었을 테지만, 그 견딤의 시간들로 자말의 내면은 더욱 강해지고 깊이있는 작가로 거듭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영화에 대한 비평들을 살펴보면 자말의 재능-농구와 글쓰기-에 초점을 맞추고, 그 재능을 키워주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나는 자말의 재능보다는 그의 손때 묻은 노트에 집중하고 싶다. 손때 묻은 습작 노트를 간직한다는 것, 영화 속에 등장한 노트는 5-6권이지만 그 노트를 지니고 있는 자말의 나이가 16살인 걸 감안하면 자말은 10살을 갓 넘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신의 마음을, 아픔을, 꿈을 그 노트에 적었을 것이다. 그 끄적거림이 하루에 그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고 희망 없는 삶으로 가라앉고 싶을 때 힘을 얻는 방법으로 글을 썼을 것이리라.... 그 노트의 습작 내용이 궁금해진다.
그런 간절함으로 소중히 여기는 그 노트들을 매일 매일 가방 속에 간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왔을 자말의 간절함, 애틋함, 정성으로부터 나를 되돌아본다.
나는 자말만큼, 동주만큼 간절함을 지니고 있는지, 그 간절함으로 하루하루 나를 경영하며 노력해 왔는지, 내가 가슴에 품을 습작노트를 간직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그저 빈약한 나의 삶을 포장하기 위해 작가가 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 볼 일이다....
그렇게 준비된 자말이기에, 최소한 5년 이상의 긴 시간동안의 간절한 기다림과 매일 매일 노력의 힘으로 포레스터와의 만남으로 이끌어준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포레스터의 삶을 엿보며 내 모습을 돌아본다. 포레스터는 단 한 편의 소설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지만 성공 뒤에 온 명성이 무색하게 가족 모두를 잃어버리고 홀로 남은 괴팍한 노작가로 어마어마한 인세로 풍족한 삶을 살지만 세상에 대한 관심과 문을 닫은 채 삶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포레스터 역시 세상에 대한 관심과 문을 모두 닫아버린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세상이 그립다. 닫혀 진 문에 드리워진 커튼 사이로 창밖 풍경을 살피고 동네 소년들의 농구하는 모습도 살피고 새들도 살피고 자연도 살핀다. 그렇게 그는 세상으로의 문을 닫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리워하며 그렇게 자신의 살을 살아간다. 함께했던 가족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이 어떤지,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했을 때의 아픔이 어떤지, 사실 가늠하기 어려운 삶의 무게이지만 포레스터 역시 그 삶의 무게를 견디어 내기 위해 자신만의 공간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그 세월의 무게를 견디어 내고 있었을 것이다.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닫고 있었지만 그리움에 창문 밖 세상을 바라보고 있던 포레스터와 세상으로 나가고 싶지만 나갈 수 없었던 현실(가난, 인종)에 절망했을 자말, 그 둘의 만남은 우연이 아닌 서로의 간절함으로 만들어진 인연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는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열기 힘든 어린 청년 자말과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스스로 닫은 노작가 포레스터가 만남을 통해 서로의 삶을 변화시켜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둘은 이렇게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지닌다. 그 공통점은 서로의 삶속에 매일매일 자신의 삶을 견디는 힘으로 글쓰기를 택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열기 힘든 자말에 가까울까 아니면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스스로 닫은 포레스터에 가까울까? 나는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열기 힘든 자말이면서 동시에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스스로 닫은 포레스터이기도 했다.
열심히 꿈(교사)을 향해 달려왔지만, 그래서 그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했지만, 내 가슴속에 채워지지 않는 열망에 나는 당황했고, 새로운 꿈(교사로서 관리자)이 필요했다. 그 꿈이 현실적인 여건으로 절망되었을 때부터 내 삶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어찌보면 어린 자말이 어린 시절부터 해왔을 고민을 나는 결혼하고 아이 낳고 30대 중반이 되면서 시작한 것이다. 나는 성취지향적 삶을 살아왔다. 그 삶의 이유는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였고, 나는 언제난 성취를 통해 사랑과 인정을 받아왔다고 생각했고, 내가 성취할 것이 없다는 것은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것과 같이 여겨졌었다.
그런 나를 흔들리지 않고 세우기 위해 나는 성취해야 했다. 하지만 나의 성취를 위해, 나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포기할 수 없는 단하나의 존재 ‘아이’가 내 곁에 오면서.... 나는 내 삶의 총체적 혼란기를 겪게 되었다. 그 혼란기를 견디어 온 힘.... 그 힘은 흔들리는 나를 지탱해줄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었다.
고민의 시간들 속에 나는 ‘삶의 의미’를 찾았고, 그 안에서 행복했고, 매일 새벽을 열었고, 몰입했고, 그 몰입의 시간들이 나를 키웠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고, 결국 나는 동시성의 발현으로 연구년이라는 선물을 받았고, 김유진 선생님을 만났고, 무엇보다 가장 커다란 선물 ‘나’를 발견했다.
‘나와의 조우’
마흔을 넘긴 나이에 드디어 나와 만났구나...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만나서 참 다행이다.
내 삶을 되돌아보면 후회는 없다.
후회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냐마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는 노랫말처럼, 지나간 것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
나를 만나게 된 것도, 지금에서야 만나게 된 것도 다 의미가 있는 것이리라...
내가 지닌 상처,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수많은 신호들을 만난다. 세상엔 스스로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이 많다. 여자라는 이유로 상처받았다고 여긴 나이지만, 그로인해 받은 축복도 많다. 내 아픔을 드러내고 어루만져주니 많이 치유되는 느낌이다.
결핍은 아프지만 아픈 만큼 가르침을 준다. 그 아픔을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아픔 덕분에 자유로워 질 수 있는 나를 꿈꾼다. 그래서 그 아픔을 웃어 넘길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아픔을 즐길 것이다. 눈부신 아픔을 온천하에 드러내 아프다고 호소해보고 싶어진다.
자... 그렇다면 이제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무조건 쓰는 것이다. 나의 글쓰기의 이유는 ..... 행복해지기 위함이다.
무언가가 되기 위해 가졌던 이유는 이제 묻어버리기로 했다. 그것은 내가 추구해야 할 것이 아니다. 주어지면 감사하겠지만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나는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진 않다. 내가 어린시절부터 줄곧 해왔던 글쓰기, 나는 글쓰기가 좋다. 내 생각을 글로 적고 읽고 하는 이 과정을 통해 나와 좀더 깊은 만남을 갖게 되는 것도 좋다. 그리고 내가 조금더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도 좋고, 행복해지는 것도 좋다. 그래서 나는 쓰고 싶다. 그리고 나의 글이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나는 글을 쓰고 싶다. 내게 기쁨을 주는 일이니까... 내 삶의 의미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다짐한다. 매일 매일 글을 쓰리라. 가슴으로 쓰리라. 머리로 쓰는 것은 나중에 하리라. 그렇게 하리라... 그래서 내 삶을 꽃피우리라.
그래서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열고 나가 자말을 만나고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스스로 닫은 포레스터를 만나 함께 손잡고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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