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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치
    글쓰며 사는 삶/기록하고 기억하기 2021. 3. 29. 06:05

    2021.03.29 8일차 5:30 시작

     

    주말 내내 비가 내렸다. 경루이 가고 봄이 오기전 대지를 촉촉히 적시는 비,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보송보송해진 대지를 뚫고 풀과 나무들이 알알이 맺힐것만 같다. 

     

    비 오는 날이면 기름 듬뿍 넣고 지져낸 부침개 생각이 난다. 

    맛깔스레 익은 김치 한포기면 더할나위 없이 맛난 김치 부침개가 되니까. 

    김치 냉장고를  열어본다. 친정엄마가 정성껏 담궈서 보내주신 김치가 하나 가득이다. 

     

    언제 담궈서 챙겨주었지도 모를, 열어보지도 못한 김치가 한가득이다.

    작년 겨울 담궈 주신 김장김치를 열어보니 맛있게 잘 익었다. 

    김치 한포기를 꺼내 쫑쫑 썰어본다. 그리고 잘 개어 놓은 밀가루 반죽에 쫑쫑 썰어놓은 김치를 넣는다. 

    '김치 부침개엔 김치국물이 들어가야 색도 곱고 맛도 좋지'

    국물을 부어본다. 알맞게 고운 주황빛으로 물든 부침개 반죽을 만들고서야 나는 김치 뚜껑을 덮는다. 

     

    김치 냉장고 옆에는 냉장고속에 미처 넣지 못한 김치통 하나가 나와 있다. 

    다 먹지 못했으니 이번에는 새 김치를 담그지 말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명절이면, 누구의 생일이면, 오랜만에 들리는 친정 나들이면, 

    늘 새 김치를 담궈 두고 기다리곤 했다. 

     

    칠순 노모가 다 된 친정엄마는 중학생이 된 딸아이의 생일에 오기 위해,

    일주일전부터 장을 봐 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맛깔나게 백김치를 담궜으니, 

    아이 생일날은 맛나게 먹을 수 있을거라면 자랑하듯 말하곤 했다.

    그러나 오시기 며칠전 우울감을 이기지 못하고 마신 술 때문에 거실에서 넘어진 엄마는

    깨진 유리 덕분에 목을 수십바늘 꿰메야 했다. 

     

    엄마가 보내온 사진을 봤다. 눈은 시퍼렇게 멍들었고, 상처를 꿰멘 목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런 엄마의 사진을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김치가 너무 많으니 김장은 조금만 하자는 만류에도 마음이 약한 엄마는 그러지 못했다.

    오랜 시간 함께하시던 엄마의 형님들의 김장을 늘 함께하시곤 했는데, 그러니 우리집 김장량은 몇백포기도 모자랗다.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서 김장 속을 넣고 함께 버무리고 나면 커다란 가마솥에 푹 끓여놓은 무국에 밥 한그릇을 말아 드시게 하고서야 엄마는 제 몫을 다한 사람처럼 흐뭇해 하곤 했다. 

     

    그래서 우리집의 김장날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 거렸다.

    워낙 어린시절부터 보고 자란 모습이라 익숙했지만, 이젠 노쇠해진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엄마는 과거의 당신처럼 그렇게 김장을 했다. 그러다가 김장하고 응급실로 실려가 수혈을 받기를 수차례가 되고서야, 엄마는 동네 어르신들과의 김장을 그만 두었다. 

     

    이제는 오붓하게 가족들만의 김장을 하려나 싶었던 엄마는, 이번에는 친척 언니 오빠들과 이모 외삼촌의 김장을 담구기도 했다. 그렇게 일을 벌이고 나면 1~2주는 뒷풀이를 하는것마냥 술을 먹고 자신의 억눌린 감정을 표출하고서야 끝이 났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엄마를 가장 잘 이해한다고 여기는 나조차도 어렵다. 

    이번에는 조금만 하자는 나의 만류에 철썩같이 약속했지만, 남매와 외삼촌, 이모를 챙겨주고 나니 너무 부족하다며,

    기어이 김장을 더 해서 세입자들 이웃들에게 김장 김치를 주고서야 마음을 놓았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엄마의 넉넉한 인심 덕분에 엄마 주변에는 늘 사람이 많았다.

    아무리 어려운 형편이더라도 먹을 것을 나눌때면 아낌없이 나누던 엄마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맛난 김치지만, 이제는 그 김치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지금 우리집에 있는 김치들을 담그고 엄마는 얼마나 혼자만의 감정의 늪을 헤매었을까?

    엄마 혼자 걷고 있는 그곳은 엄마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걸까?

    누가 엄마에게 강요하지 않았지만,

    엄마 스스로 선택한 그 일이지만, 

    어쩌면 엄마도 그 선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스스로를 어쩌지 못해,

    그 일을 반복하고 있는것은 아니었을까?

    엄마가 김치를 버무리며, 수없이 반복했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엄마가 더 이상 김치를 담글 수 없고, 

    그래서 우리집 김치 냉장고에 가득했던 김치통이 텅 비어 버리게 되면, 

    그때는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될까?

     

    김치 부침개가 노릇노릇 맛있게 익어가고, 코를 벌름걸리며 딸아이가 다가온다. 

    맛있게 부쳐진 김치 부침개를 떼어 먹는데 괜스레 목이 메인다. 

    엄지척을 올려 보이는 딸아이 몰래 뒤돌아 눈물을 찍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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