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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으로나로 선다는 것/책이야기 2020. 8. 3. 20:57
2020.07월
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
다시, 책으로
1. 저자에 대하여 / 매리언 울프
인지신경학자이자 아동발달학자. 읽는 뇌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다. 하버드 교육대학원에서 인간발달 및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뇌, 언어, 난독증에 대한 인지신경과학과 심리언어학 연구를 시작했다. 현재 UCLA 교육정보대학원에서 설립한 난독증, 다양한 학습자 및 사회정의 센터 책임자이며 채프먼 대학교 프레지던셜 펠로다.
첫 번째 저서인 <책 읽는 뇌>에서 매리언 울프는 독서와 난독증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대중적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았다. 우리 뇌가 어떻게 읽는 법을 학습하는지를 연구하는 데 몰두한 사이, 세상이 인쇄 기반 문화에서 디지털 기반 문화로 급격히 변화한 것이다. 하루에 6~&시간씩 디치털 매체에 빠져 있는 청소년들을 목겨갛면서, 울프는 그들 뇌의 읽기 회로가 어떻게 변형될 수 있는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저자 자신조차 책에 몰입하던 경험을 잃어 버리고 자신의 논문에서 다루던 초보자 수준의 읽는 뇌‘로 회귀하는 것을 깨닫고는 자신의 읽기 회로를 되찾기 위한 실험을 시작한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디지털 세계의 엄청난 정보들은 새로움과 편리함을 가져다 주었지만, 그 대가로 주의집중과 깊이 있는 사고를 거두어갔다. 스크린에 담긴 수많은 정보를 빠르게 훑기 위해 건너뛰고 요약하며 읽는 방식은 글쓰기에 대한 선호까지 바꾸어 버렸다. 더 짧고 단순하며 건너뛰어도 무방한 문장에 길들어지면서, 우리는 문자가 인류에게 가져다준 가장 커다란 공헌인 비판적 사고와 반성, 공감과 이해, 개인적 성찰 같은 본성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 있다.
<다시, 책으로>에서 매리언 울프는 오늘날 기술이 읽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이 인류의 미래에는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역사와 문화, 과학 분야를 오가는 다야앟ㄴ 자룓르을 토대로 생생한 사례를 활용해가며 복잡한 생각을 명료하게 펼쳐낸다. 동시에 기억과 주의의 질, 아름다움과 진실을 자각하는 능력을 회복하기 위한 희망적인 제언도 잊지 않는다.
터프츠 대학교에서 엘리엇-피어슨 아동발달학과 교수와 시민양성 및 공공 서비스 교육을 위한 존 디바지오 발전기금 석좌교수, 독서와 언어 연구 센터 소장을 지냈다. 전 세계의 문맹 퇴치를 위한 문해 프로젝트인 ’큐리어스 러닝‘을 공동 설립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UCSF의과대학 난독증 센터와 협업하는 등 난독증과 문맹 퇴치에 관한 혁신적 연구와 다양한 활동으로 국제난독증협회와 미국심리학회, 오스트레일리아 학습장애협회가 주는 최고상을 비롯해 많은 상을 받았다. 저서로 <책 읽는 뇌>st Century>등이 있으며, 그 외에 160여편의 학술 논문을 발표했다.
2. 목차
옮긴이의 말
첫 번째 편지 – 읽기, 정신의 카나리아
두 번째 편지 – 커란 서커스 천막 아래 : 읽는 뇌에 관한 색다른 관점
세 번째 편지 – 위기에 처한 깊이 읽기
네 번째 편지 - “독자였던 우리는 어떻게 될까?”
다섯 번째 편지 – 디지털로 야육된 아이들
여섯 번째 편지 – 첫5년 사이, 무릎에서 컴퓨터로 : 너무 빨리 옮겨가지 마세요
일곱 번째 편지 – 어떻게 일긱를 가르쳐야 할까
여덟 번째 편지 – 양손잡이 읽기 뇌 만들기
아홉 번째 편지 – 독자들이여, 집으로 오세요
감사의 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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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슴을 치고 들어온 구절
23> 아이들은 더 어렵습니다. 끊임없이 주의가 분산되는 데다 외부에서 자극이 밀려들지만 그것이 지식의 저장고에 통합되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이 말은 읽기에서 비유와 추론을 끌어 내는 아이들의 능력이 점점 더디게 발달할 거라는 뜻입니다.
26> 아이들이 겉보기엔 단순한 이 읽기의 행동을 배우 스스로 문해력 기반 문화에 속하지 않으면 장차 어떻게 될지가 불현 듯 명료해 보였습니다. 그럴 경우 아이들이 저처럼 이상한 나라로 통하는 구멍에 빠져 몰이비 이주는 정교한 즐거움을 경험하기란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4. 리뷰
문해 기반 문화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책은, 지혜를 얻는 유일한 저장소였다. 날이 밝아 해가 있는 시간에는 놀이터로 나가 뛰어 놀았고, 저녁 무렵이면 저물어가는 해를 아쉬워하며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땀범벅이 되어 뛰어 놀았던 나를 씻겨 방으로 들어보내면, 그때부턴 방바닥에 배를 깔고 뒹굴 거리며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처럼 책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아껴가며 읽었던 세계명작전집, 수십번을 읽고 또 읽었다. 책을 읽으며 주인공의 삶에 들어가 보는 즐거운 경험은 나에게 ’책읽기의 즐거움‘을 선물해 주었다.
그렇게 나고 자란 내가 어른이 되었고, 세상이 디지털 문화 기반의 문화로 변했다. 세상이 변해가는 사이 나는 여러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변해가는 세상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조차 잘 알지 못한채 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내가 세상의 전부인 내 아이에게 나는 무엇을 가르쳐 주어야 할까? 문득 책임감이 느껴지는 순간이 되었다.
책 읽기의 중요성을 의심해 본적은 없지만, 무엇 때문에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선뜻 정의할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책을 놓치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린 시절 방바닥을 뒹굴거리며 읽었던 즐거운 추억, 수많은 꿈을 꾸고 용기를 갖고 걸어나가게 해주었던 수많은 문학속 주인공들의 감동의 항연 덕분은 아니었을까 문득 생각해 보곤 했다.
그런 내가 다시 책을 읽어야겠다 생각했던 건, 급박한 삶속에 방향을 잃어버린 것 같은 외로움이 밀려오던 순간이었다. 그저 무작정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디지털 기반의 급속한 문화속에서 허덕이며 방황하던 때였다. 내 삶의 방향을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알지 못할 때, 그때가 되어서야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다시, 책으로 돌아온 내 삶은 깊은 읽기를 통해 사색하게 했고 쓰는 나로 살게 해주었다. 그때의 나의 느낌은 어쩌면 본회퍼가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결핍을 견딜 수 있게 해주었던 읽기라는 행위 속에 깃든 보이지 않는 성소(P291) 덕분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런 깊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었을까? 디지털 문화속에 자라는 내 아이를 깊은 읽기의 즐거움을 느끼는 아이로 자라게 해주고 싶었다. 디지털 문화 속에서 아이를 지켜내는 일은 녹록치 않았다. 어린 시절에야 집에서 부모의 양육 방법에 따라 통제가 가능했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사회적 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으로 아이가 문해 기반 문화의 즐거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조금 더 천천히 디지털 문화가 아이에게 스며들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왔다. 그러나 코로나로 교육환경이 급작스레 바뀌면서 디지털 문화는 이제 아이의 문해 기반 문화를 뒤흔들고 있다.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의 변화에 어떻게 방향을 세워야 할지 알지 못할 때, <다시, 책으로>가 제시한 양손잡이 읽기 뇌 만들기 처방은 그래서 반가웠다. 통제 불가능한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 마음이 힘들었는데, 코드 전환이 가능한 읽는 뇌를 구현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이라면 도전해볼만 했다. 이것은 디지털 기반의 아이들에게도, 문해 기반의 나에게도 중요한 도전이 될 것 같다.
p299> 청소년이 외부 정보원에 너무 의존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를 것이라는 사실이 걱정스러운 것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안내자인 우리 자신의 사고가 어느새 협소해지고 복잡한 이슈에 대한 관심이 부지불식간에 줄어드는가 하면 140자 이상으로 글을 쓰고 읽고 생각하는 능력이 감퇴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우리 모두가 읽는 사람으로서, 쓰는 사람으로서,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봐야 합니다.
303p> 우리가 읽은 정보와 거기 적용하는 분석 사이에서 커져가는 간극을 무시하고 보다 많은 지식을 보다 빠르게 얻는 새로운 모드로 넘어가기는 너무 간단합니다.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다음에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 어떤 능력들이 미래 세대의 읽는 뇌에서 최선의 조합이 될지 우리의 모든 지력을 동원해 검토해야 합니다.
37> 우리는 좋은 독자로서 세가지 삼ㄹ을 살고 있는지, 은연중에 세 번째 삶으로 들어가느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읽기라는 우리의 고향을 아예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그렇게 확인하는 과정에서 저는 읽는 뇌가 간직한 관조의 차원을 육성하고 보호애햐 비로소 우리 공동의 지성과 연민, 지혜를 최상으로 유지하고 전수할 수 있다고 제안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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