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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두 얼굴』을 읽고나로 선다는 것/책이야기 2020. 10. 21. 04:13
결혼 5년 만에 기다리던 아이가 나에게 왔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지 못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는 언제든 기댈 수 있는 가족인 ‘나의 엄마’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기 시작하면서 가족 내에 존재했지만 조심조심 덮어두었던 문제들이 조금씩 불거지기 시작했다.
결혼한 지 5년이 지났지만 당시의 친정엄마와 나는 자아분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였다. 살림이 서툰 나는 청소, 빨래, 요리, 장보기 등을 친정 엄마에게 물었고, 그럴 때마다 친정엄마는 기꺼이 수고로움을 다해 나의 엄마 역할을 대신 해주기를 자처했다. 장성한 자녀로서 친정엄마의 수고로움이 마음 편치 않았지만, 자식을 향한 헌신이 엄마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그런 상황들을 어쩌지 못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수고로움에 대한 한탄과 원망의 말들이 나에게 돌아올때면 혼란스러웠다. 엄마와의 소통에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 상태로 아이가 태어났고, 육아에 대한 고민을 할 겨를도 없이, 친정엄마는 기꺼이 수고로움을 자처했다. 아이를 낳고 친정집에서 산후조리와 출산휴가 기간을 보낸 나는 아이를 맡겨두고 복직을 했다. 출퇴근 거리가 멀어 주말에만 내려와야 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자주 만나지 못했던 딸과 사위, 아이를 볼 수 있다는 기쁨과 함께 수고로움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이 함께하게 된 친정엄마의 양가감정이 드러나는 소통은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러던 중 친정엄마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아이를 데리고 오면서부터 원가족과의 문제는 더욱 나를 힘들게 했다. 아이 육아와 직장생활만으로도 벅찬 나였기에, 친정 엄마의 부정적 감정이 나에게 쏟아 질때면 나의 스트레스도 극에 달했다. 그런 스트레스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감정이 터져버리면 나도 내 자신을 어쩌지 못하곤 했다. 나의 스트레스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쏟아내던 날, 안아달라고 매달리던 녀석을 밀쳐내고 소리지르던 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던 날, 그 순간이 내 가슴에 너무나 깊이 박혔다.
상처가 사그라들기를 기다렸지만, 깊게 패인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가 참 힘들었는데,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 자신의 문제와 마주하기 시작했다.
25> 에리히 프롬이 자신을 알게 된다는 말은 곧 자신의 상처를 마음과 감정으로 직면하고 이해한다는 뜻이다. 자신의 상처를 알게 되는 사람은 상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자신을 짓눌러오던 외로움과 혹시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버려 더 외롭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의 원인을 알게 된다.
내안의 상처를 직면하기 시작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 조금 더 객관적으로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가족과의 문제가 해결되진 않았다. 친정엄마의 투사적 동일시를 막을 수는 없었고 그때마다 많이 힘들었지만, 그 힘든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아이’였다. 내가 세상 빛을 보게 한 내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엄마의 불안으로 제대로 사랑한번 못해 준 엄마이면서 자기 안에 일어난 부정적 감정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채 퍼붓는 엄마가 되고 싶진 않았다.
‘어떻게 해야 아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65> 가족 문제의 세대 전수는 어떻게 끊을 수 있을가 보웬은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가족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 부모가 했던 행동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한다.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당시 아이로서 경험했던 공포, 수치심, 분노, 무력감 등을 직면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기도 모르게 나타나는 어린 시절 익숙했던 행동들이 자녀와 배우자에게도 자신이 아이 때 느꼈던 비참한 감정을 심어 주고 있음을 깨닫고, 그런 경험을 누구에게도 물려주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
내가 받은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어린 시절,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 순간 속에 친정엄마가 늘 함께였다. 언제나 곁에서 사랑해주고 품어주고 한없는 위로와 용기를 주었던 단 한사람이 나의 친정엄마였다. 나에겐 엄마가 전부였고 엄마에겐 내가 전부였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친정 엄마의 전부였던 나를 떠나보내지 못한 엄마의 슬픔을 이해하고 나니 원망하는 마음보다는 감사함으로 엄마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204> 심리학에서는 태어나서 3년 동안 아기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엄마라고 한다. 이 시기에 엄마와 애착이 형성되지 않으면 훗날 어떤 사람에 의해서도 그 결핍이 채워지지 않는다.
... 갓난 아이에게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거울은 바로 엄마다. 아이는 엄마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본다. 따라서 이 시기의 아기가 엄마의 얼굴을 바라볼 때 아기는 엄마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이다.
첫돌에서 네 살까지 아이들은 상처에 극도로 취약하다. 이 시기에 부모로부터 받은 무조건적인 사랑과 관심은 건강한 자기애를 발전시킨다. 부모에게 충분히 사랑받고 세심하게 돌봄을 받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기애가 형성된다. .... 앞으로 살면서 겪게 될 두렵고 절망적인 상황을 헤쳐 나가는 등불이 된다.
나의 어린 시절 행복한 순간 속에 늘 함께했던 엄마였지만, 나는 아이에게 그렇지 못했다. 세상에서 엄마가 전부였던 그 시절, 엄마의 불안과 미숙함을 어쩌지 못하고 아이를 외롭게 했다. 머리감는 욕실 앞에 와서 안아달라고 울고 있는 녀석을 이해할 수 없다고 소리치던 못난 에미였다. 태어나 3년 동안 가장 중요한 사람인 엄마라는 사람이 아이에게 해준 것이라곤 스스로의 부정적 감정을 쏟아내기만 했던 나였다. 어떤 사람에 의해서도 채워지지 않는 엄마의 사랑이 아이의 행복을 위해 해주어야 할 그것임을 알게 된 순간 주저할 수 없었다. 너무 늦지 않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아이 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이에게 주어야 할 엄마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 주었다.
아이만 바라보며 사는 삶을 살고도 싶을 만큼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행복했다. 엄마의 시간을 아이에게 모두 다 주고도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녀석에게 엄마 인생을 보상해달라고 말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어린 시절 제대로 사랑도 해주지 못한 녀석인데 자라서까지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정엄마가 나에게 쏟아낸 원망의 이야기들이 나를 아프게 후벼 팔수록 아이를 위해서라도 나를 놓아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221> 자녀가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부모가 원하지 않고 방해한다면, 독립기에 놓은 자녀는 먼저 자기 가족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부모가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성장해서 자신의 부모로부터 어떻게 독립과 자율을 얻었는지 탐색하면 도움이 된다. 많은 경우 답은 거기에 있다. 부모 자신들이 독립과 자율을 어렵게 이룬 경우 자녀에게도 반복시키려는 무의식이 작동한다. 이 숨겨진 메커니즘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진전이 이뤄진다. 가족사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면 부모에 대한 분노와 원망의 강도가 누그러진다. 부모를 탓하고 상처 받으며 좌절하는 대신 그 한계를 받아들이며 현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가능성을 찾기 시작한다. 비로소 하나의 시련을 넘어 자신의 의지를 갖고 독립과 자율을 얻기 위한 첫 발걸음을 뗄 수 있게 된다.
아이가 커갈수록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이 다행스러우면서도 아쉬웠다. 엄마가 전부였던 녀석에게 조금씩 다른 것들이 채워지는 모습에 허전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엄마의 복직일이 다가오면서는 허전함보다는 감사함을 마음에 품었다. 그렇게 허전함과 감사함, 다행스러움과아쉬움, 걱정과 믿음의 양가감정을 안고, 나는 복직을 했다.
복직 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엄마 빨리 오라고 울면서 문자도 하고, 자기 혼자만 남겨두고 엄마 아빠가 다 가버려 집에 혼자 있기 싫다고 밤새 엄마 품에 안겨 울기도 했다. 학교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엄마, 아빠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다. 그런 녀석을 위해 지금의 엄마,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259 한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욕구 충족의 유예를 매우 중요한 과제로 평가한다. 눈앞의 욕구를 당장 충족하는데 급급하지 않고 다음에 얻을 보상과 결과를 위해 미룰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를 잘 돕기 위해서는 부모는 서로 모순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어떤 때는 아이의 욕구를 즉각적으로 충족시켜 주어야 하지만 동시에 아이의 자아 기능 발달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바로 들어주지 않고 잠시 연기한다거나 때로는 단호하게 거절하는 일도 포함된다. 거부의 경험은 아이에게 몹시 고통스러운 아픔이다. 때문에 부모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거부 할때는 평소보다 사랑과 관심을 더 많이 주어야 한다. 그러면 아이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단지 자기가 원한 어떤 대상이 거부당했을 뿐임을 깨닫는다. 이를 통해 아이는 당장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지만 조금 참고 기다리면 다른 형태로 더 크게 충족될 수 있음을 배운다.
‘해줄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되, 해줄 수 없는 것은 아이에게 솔직하게 이야기 하기’
아이가 경험하게될 거부와 그로 인한 고통이 아프겠지만, 평소보다 더 사랑하고 관심을 쏟으며 그렇게 걸어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과 관심을 쏟으며 걸어가기 위해 내가 해야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루 종일 떨어져 있다가 만난 아이의 말에 귀기울여 주기, 이야기 하려는 아이의 눈을 마주보고 경청하고 성찰하는 부모가 되어 주어야 겠다.
264> 때로는 가족 안에서 사소한 것으로 싸우고 우울해하지만 가족이 있기에 세상에 맞설 힘과 용기를 얻는다. 가장 힘든 고통과 아픔을 주는 사람들 또한 가족이지만 우리는 함께 살 수 있다. 가족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참고 배우며 알아가야 할 사람들이니까. 우리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노력일 것이다. “왜 가족이니까”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가족의 두 얼굴>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상처들을 쉽게 꺼내어 살피지 못했던 지난 시절, 또 다른 방어기제들로 뒤엉켜 서로를 아프게 했다. 그러나 <가족의 두얼굴>을 읽으며, 차마 직면하지 못했던 가족 비밀과 문제들을 직면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덕분에 가족 갈등의 원인과 해결을 위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그 일이 지금 우리의 생각, 감정,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는 사람은 사막에서 물을 구하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263p)는 저자의 이야기가 가슴에 남는다.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가족들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묻고 마음을 다해 경청해야 겠다. 그런 노력들이 우리를 더욱 깊이 사랑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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