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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나로 선다는 것/책이야기 2020. 11. 4. 23:56

    좋은 책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책속의 의미들을 온전히 이해가기 위해서는 의미를 수용할 독자의 마음이 어떠한 것인지가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당대 최고의 문호로 서사, 묘사, 문장력, 캐릭터, 주제의식까지 모두 갖춘 걸작이라 하더라도, 톨스토이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얼마나 마음에 담을 수 있는가는 순전히 독자인 내 자신의 몫이다. 왜냐하면 모든 작품은 그 작품을 읽는 독자로서의 나 자신의 과거를 통해 해석되고, 지금의 삶에 적용되며, 미래의 삶을 통해 그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은 무엇일까? 자꾸만 멈추어 서서 내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고, 지금의 삶을 점검하며 미래의 삶의 방향을 다잡도록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내게 좋은 작품으로서 충분한 의미를 안겨주었다.

     

    톨스토이는 죽음을 앞둔 이반 일리치의 삶의 궤적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그 삶이 어디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잘못된 삶이 어떠한 후회를 남기게 되는지, 스스로 옳다고 믿었던 삶이 거짓임을 알게 되었을 때 경험하게 될 정신적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그 고통을 외면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정말 중요한 그것이 더욱 멀어져 가게 되는지, 작품의 곳곳에서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이반 일리치가 되돌리기에는 너무 짧을지 모를 세상을 뜨기 한시간 전쯤에서야 얻게 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그것을 발견하게 된 순간, 그것을 일깨워준 아들의 눈물로 얼룩진 얼굴 잔상이 겹쳐지면서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뒤섞였다.

     

    이반 일리치의 삶에 나의 삶을 비추어 본다.

    과거의 나는 부자가 되기를 꿈꾸지는 않았지만, 남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무언가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조금만 노력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랑이 전부라 믿었던 사람과 10년을 연애하고 결혼을 했다. 결혼 5년 만에 우리에게도 아이가 생겼고, 남들의 부러움을 살만큼 잘 키우고 싶었다. 그러나 두 가지를 모두 해내기는 힘들었다. 결혼 이후 일에 몰두했던 이반 일리치와 달리, 엄마인 나는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그렇게 만든 사회적 분위기가 부당하다 생각했고, 나만 피해자라 생각했고, 그런 부당한 감정들을 아이와 남편에게 쏟아내며 살았다.

     

    내 자신에 대한 대접이 말도 안 되게 가혹하고 부당하게 느겨지던 날들, 남들은 아주 별것 아닌 사소한 문제로 여기고 있는 것, 모두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소외감, 나를 알아주지 못하는 자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분노 가득했던 결심, 그런 결심으로 내달리던 나를 되돌아서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눈물로 얼룩진 아이의 얼굴

    이반 일리치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던 계기가 그러했듯 나에게도 그랬다. ‘눈물로 얼룩진 아이의 얼굴은 내 삶에 깊은 질문을 남겼다.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그 삶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이제껏 옳다고 믿으며 살아왔던 모든 삶을 뒤엎어 다시 생각해야 했다. 옳다고 믿었던 자신의 삶이 부정당했을 때 느껴지는 정신적 고통이 어떤 느낌인지 뼈아프게 깨달으며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러나 깨달았다고 해서 금세 과거와 다른 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남아있는 시간을 가늠해보기 시작할 때 지금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이반 일리치에게는 코 앞으로 다가온 죽음이 그랬고, 나에게는 얼마 남지 않았던 아이의 유년시절이 그랬다. 그 시간과 함께 가까이 다가온 죽음의 흔적들을 곳곳에서 경험했다. 중환자실에서 만났던 친정 아빠의 초췌한 모습, 치료 받던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하여 큰 병원으로 옮겨야 했던 순간, 마흔이 되면서 수술을 권유받았던 나의 건강상태, 최근에 이유없는 어지러움으로 시달리고 있는 신랑의 건강 상태까지...... 죽음은 그렇게 언제 어디서나 고개를 내밀고 삶을 바라보고 있었다.

     

    죽음에 대해 인식하고 함께 걸어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두렵고 무서웠고 피하고 싶었다. 내것이 아니길 바랬고, 나에게는 너무나 요원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온 죽음의 흔적들을 경험하면서 삶과 죽음은 결국 같은 것을 말하고 있음을 조금씩 알아간다.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온다면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이기를 원할까 생각해 본다.

    가슴깊이 사랑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나의 가족들이 너무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의 가슴속에 늘 함께하는 사랑 넘치는 엄마이자 아내이자 자녀로 함께하려 노력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내가 이룬 성취가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위한 것이었기를 바란다. 그래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변화되어 가는데 도움이 되었던 삶이었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누구의 삶이 아닌, 스스로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아왔던 삶이었기를 바란다.

     

    매 순간 죽음을 기억하며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야 겠다.

    그 노력이 결국은 을 더욱 깊고 의미있게 만들어 줄 것임을 이제는 알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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