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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이 선생이다』를 읽고
    나로 선다는 것/책이야기 2020. 11. 3. 06:35

     

    제목이 안겨주는 무게를 감히 가늠해보지 못한 채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볍게 읽고 넘기기에는 삶의 폭과 깊이가 쉽게 가늠이 되지 않을 만큼 묵직함이 느껴져 책장이 쉽사리 넘어가지 않았다. 이런 책을 읽기 위해서는 몸도 마음도 준비가 되어야 하는데..... 쉽게 넘겨지지 않는 책장을 부여잡고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무렵... 아이가 뒤늦게 겨울방학을 했다. 아이와 함께 오롯이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방학이기에 함께하는 시간에 최대한 집중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은 내 안에 품어진 감정과 단상의 기억들을 온전히 담아두고 싶은 마지막 시간이기도 했다. 낮에는 아이에게 밤에는 나 자신에게 쉼 없는 몰입의 시간들이 이어지니 몸도 마음도 조금씩 지쳐갔다. 쉼 없이 몰아치던 내 몸에 결국 탈이 났다. 한 문장 한 문장 허투루 읽어 보내기 아쉬울만큼 삶의 깊이와 여운을 주는 좋은 책을 만난 것은 분명했지만 내 안에 그것을 담아내며 읽어 내려갈 에너지가 부족했다.

     

    읽어야 한다는 당위와 읽어 내려가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몸과 마음의 상태 사이에서 마음이 불편했다. 거기에 더해 이번주에는 아이와의 여행도 계획중이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독서와 리뷰도 마무리 짓고 기쁘고 가볍게 여행을 떠날 생각이었다. 거기에 더해 초고를 써나가면서도 감정적으로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마음속 문제들이 내내 나를 아프게 했다.

     

    결국 나는 밤이 선생이다를 다 읽지 못하고 여행을 떠났다. 여행 가방을 챙길 때도 책을 챙겨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넣기는 했지만 결국 책장을 펼치지 못했다. 저자가 건네는 깊고 넓은 생각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도 했고, 그런 몸과 마음으로 읽는 것에서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냥 온전히 여행을 즐겼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먹고 싶은 것 먹고 보고 싶은 것 보고 힘들면 쉬고 책 읽고 싶으면 가볍게 머리 식힐 책을 읽으며 그렇게 지냈다. 그렇게 편안하게 여행을 마치고 목요일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금요일인 오늘에서야 남겨두었던 밤이 선생이다의 후반부를 읽기 시작했다. 이제야 책 내용이 하나 하나 마음 깊이 들어와 머물다 가는구나 싶었다. 책을 온전히 읽고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했었는데 다행히 그 순간을 맞이했구나 싶어 감사했고, 그 마음으로 마지막 글까지 읽고 책장을 덮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문득 마음에 의문이 생겼다. 왜 저자는 <밤이 선생이다>라고 제목을 붙였을까? 그 이유를 나는 <낮에 잃은 것을 밤에 되찾는다>는 글에서 찾았다. 이성의 시간인 낮 동안 사회적 자아들에 의해 빚어진 분열과 상처들을 치유해 가는 것은 결국 어둠의 입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상상력과 창조적 말들이라는 저자의 해석에 깊이 공감했다. 이성의 칼날을 들이밀며 욕망에 들끓어 사납게 으르렁 거렸던 사회적 자아가 춤을 추던 낮을 보내고 나면 내 안에 생겨난 상처들이 아파서 밤새 울었고, 후회와 반성으로 다짐하며 적어 내려갔던 수많은 글들이 나를 다시 일어서게 했었으니까....... 낮에 잃은 것을 밤에 되찾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역시나 나와 직면하며 지새웠던 수많은 밤들이 나를 가르쳐 준 선생이었구나 싶었다.

     

    보고 들은 것을 정직하게 판단하여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옳은 의견을 가지려는 사람들이 평생에 걸쳐 해결해야 할 질문 목록을 품게 된 것도 반가웠다. 내가 그동안 선생으로서 교단에 서서 아이들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것에 대해 나는 얼마나 객관적이었는지 반성하게 했고 의도하든 그렇지 않았든 완벽하게 진실이라고 여기고 있던 것들이 집단의 주관적 신념에 불과할수도 있었다는 인식을 품게 되어 감사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내가 어떤 입장에서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했다. 앞으로의 나는 진리에 대한 추구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사람의 의견에 마음을 열어 자신의 생각의 깊이와 폭을 넓혀감으로써 사실에 접근하려 노력해 나가야 겠다는 다짐도 품어 보았다.

     

    소중한 가르침과 깨달음을 품었고 마음속 깊은 곳까지 순결한 사람이 되고 싶은 나이지만 나에게는 박철 시인처럼 똑똑하게 사는 일에 도무지 관심이 없는 자유로움을 지니지 못했다. 순결한 나를 꿈꾸면서도 나는 여전히 부자유가 금하는 모든 샛길로 들어서는 것을 머뭇거리곤 한다. 그 머뭇거림이 온전한 내가 되지 못하게 하고 아이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게 하며 성마르고 조급한 내가 되어가게 만든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삶에 대한 간절한 내 마음, 그러나 나는 그 마음을 어떻게 풀어가며 살아야 할지 몰랐다. 무언가 의미있는 일에 내 자신을 내놓고 싶었고, 나의 남은 생을 걸고 싶었으니까...... 그 해답을 찾아가는 길이었고, 찾았을지도 모른다 여겼던 기대가 있었고, 그 기대가 허황된 것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초고쓰기에 몰입하고 싶었는데, 그 조차도 여의치 못했다.

     

    내가 초고를 쓰는 이유가 대해 깊은 고민이 밀려올때 나는 그 해답을 밤이 선생이다의 한 귀퉁이에서 찾았다.

     

    212> 삶을 깊이 있고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은 우리가 마음을 쏟기만 한다면 우리의 주변 어디에나 숨어있다. 매우 하찮은 것이라 하더라도 내 삶을 구성하는 것 하나하나에 깊이를 뚫어 마음을 쌓지 않는다면 저 바깥에 대한 지식도 쌓일 자리가 없다. 정신이 부지런한 자에게는 어디에나 희망이 있다고 새삼스럽게 말해야 겠다

     

    내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줄 요소가 부재한 것이 아니라 숨겨진 그것을 발견해 낼 수 있는 마음을 쌓아야 한다는 것, 그 쌓기 위한 노력으로서의 초고쓰기라면 해낼 수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초고 쓰기가 나의 존재의 의미를 규정하기 위한 결과라 생각하니, 제대로 써지지 않는 순간들이 힘들었다. 완성해 내지 못하면 내 존재를 증명해 낼 수 없다는 절망감이 밀려왔었다. 그러나 나의 초고 쓰기가 내 삶을 구성하는 것 하나하나에 깊이를 뚦어 마음을 쌓는 과정이라고 여기니 마음이 편안해 졌다. 내가 아이와 함께했던 지난 시간들은 그전에 미쳐 깨닫지 못했던 리얼리티를 발견한 순간이었고, 그 순간을 온몸으로 보고 듣고 느꼈던 시간들이었으니까....... 내가 경험했던 가장 깊고 윤택했던 삶의 순간들에 감사하며 마음을 쌓는 내가 될 수 있는 마음을 회복하게 해주었던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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