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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두 사람』을 읽고
    나로 선다는 것/책이야기 2020. 10. 31. 21:07

    나의 두 사람

     

    엄마와의 기억

    어느 날이었을까? 여기가 아프다고 이마를 가리키는 나를 무릎위에 앉히고, 이마를 짚어주던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 생각난다. 그리고는 입맛 없던 내게 먹여준 물에 적신 흰 밥과 장아찌가 어찌나 맛나던지......특별할 것도 없는 그 기억이 내가 기억하는 다정하고 따뜻한 엄마와의 첫 장면이다. 그 후로도 엄마는 몸이 아플 때면 어린시절 이마를 짚어 주었던 따뜻한 그 손으로 나를 지켜주었다.

     

    먹고 사는 일이 다들 팍팍했던 그 시절, 동네 언니오빠들과 놀이터에서 놀던 나는 모처럼 마중을 해주러 엄마가 나오면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모처럼 그네 터로 마중을 나온 엄마가 보고 싶어 그네를 타다말고 뒤로 매달려 엄마를 봤다. 그 바람에 그넷줄을 놓친 나는 뒤로 고꾸라져 떨어졌지만 덕분에 엄마 품에 오래 안겨 있어서 아픈 줄도 몰랐다. 그렇게 엄마가 내게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어린 마음에는 친구들 도시락에 보이는 소시지나 꼬마 돈가스가 부러워했지만, 엄마는 한 번도 그런 음식을 내 도시락에 넣어 주지 않았다. 늘 손수 만든 정성 가득한 음식으로 도시락을 싸주곤 했다. 생일날이면 친구들과 나눠 먹으라며 싸주던 잡채와 불고기는 언제나 인기폭발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엄마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필요할 땐 언제나 손 내밀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거리에서 나를 지켜주었다. 공부가 안될 때 전화하면 미장원에 데려가 기분전환을 해주었고, 사회 초년생이 늘어놓는 푸념을 2~3시간이 되도록 즐겁게 들어주었다. 결혼을 하고서도 나는 늘 엄마를 찾았다. 쌀이 없을 때에도, 반찬이 없을 때에도, 심지어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에도 제일먼저 전화를 걸었던 사람도 엄마였다.

     

    아이 둘 키워 줄 테니 걱정하고 하는 일 열심히 하라고 말하던 엄마는, 과로를 견디지 못하고 응급실로 실려갔다. 그 뒤로 엄마의 오른쪽 팔은 회복되지 못했다. 보기 싫게 뒤틀려버린 엄마의 오른손은 이제 젓가락질조차 자유롭지 못한 몸이 되었다. 더 이상 줄 것 없는 몸이 된 엄마의 삶이 애달팠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너무 보잘 것 없었다.

     

    아빠와의 기억

    여름이면 놀러가곤 했던 고모네 집은 냇가에 놓여진 징검다리를 건너야 갈 수 있었다. 저멀리 보이는 징검다리를 혼자 건너기 무서웠던 나를 품에 안고 아빠가 징검다리를 건너곤 했다. 아빠 품에 안겨 눈을 꼭 감으면 그 무섭던 냇가를 다 건너갈 수 있었다. 아빠품은 무서운 세상에서 나를 지켜주는 그런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학교에서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다. 등굣길이 먼 나를 위해 아빠는 매일 아침 자전거로 데려다 주었다. 아빠 뒤에 매달려 등에 얼굴을 묻고 아빠 허리를 꼭 안고 가곤 했다. 뒤에서 바라보던 아빠의 등은 기대어 있어도 좋을 만큼 크고 넓었다. 여전히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성처럼 느껴졌던 시절이었다.

     

    3이 될 무렵 아빠에게 첫 자동차가 생겼다. 덕분에 나는 고3시절 아빠의 등하교길 마중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초보운전이라 언덕길에서 시동이 꺼지기도 했지만 그것도 아빠와 나의 추억으로 오롯이 남았다. 그 후로도 아빠는 마중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기쁜 마음으로 달려와 주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첫 발령지 부천으로, 신혼 살림을 차린 의정부로, 아이 때문에 이사하게 된 양주로....... 아빠는 나에게는 늘 든든하고 넓은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랬던 아빠가 중환자실에 실려갔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병원으로 달려가는 차안에서 운전하며 많이도 울어다. 내겐 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아빠였는데, 나는 아무런 힘도 되어드리지 못하고 있구나 싶었다.

     

    기억속의 엄마, 아빠를 잃어버린 날들

     

    엄마의 오른팔 마비, 아빠의 중환자실행....... 이 모든 상황의 시작은 이었다.

     

    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위고 의붓어머니 아래에서 눈칫밥 먹어가며 살아야했던 아빠,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절 누구보다 총명했지만 병원에 입원해있던 외할머니의 병원비를 벌기위해 일찌감치 여공이 되어야 했던 엄마. 두 사람은 외롭고 힘든 그 시절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의지해 살았다.

     

    월남전에 참전하여 타국 땅에서 그리움을 담아 연애편지를 보냈던 아빠와 그 편지들을 고스란히 간직해 두었던 엄마는 꽃다운 나이에 결혼을 했다. 스물다섯의 아빠와 스무 살의 엄마는 어린 나이에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평생을 땀 흘려 일해서 정성으로 두 아이 공부 뒷바라지를 했다. 정직하게 번 돈으로 삼층집을 지어 이사를 했고, 대학가에 11개의 원룸을 둔 엄마 아빠에겐 노후도 문제없어 보였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마음 좋은 엄마, 아빠는 외삼촌이 내민 종이에 무슨 의미인줄도 모르고 도장을 찍었다. 결국 그 보증서 하나로 엄마, 아빠의 평생에 전부였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며 힘든 시간들이 시작되었다. 무한 보증 덕분에 아빠는 먼 학교로 강제 전출을 당했고, 엄마는 세입자들과 경매 넘어간 집을 보러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그 힘든 시간들을 견디기 위해 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은 엄마와 아빠의 건강도 함께 앗아갔다.

     

    잃어버린 기억 속 엄마, 아빠를 되찾기까지...

     

    급작스레 내게 맡겨진 아이를 돌보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힘들었다. 아이는 너무 예뻤지만 내가 사라져버리는 것이 두려웠고, 그래서 사랑하지 못하는 내가 미웠다. 내 삶을 지켜내고 싶었고, 아이도 잘 키워보고 싶어 발버둥치며 견디던 시절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내게 모질게 퍼붓기 시작했고, 평소 말이 없던 아빠는 자주 병원으로 실려 갔다.

    힘든 일들이 숨가쁘게 몰아닥쳤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내놓았던 엄마는 급작스레 주어진 스스로의 삶을 힘들어 했다. 힘든 마음 어쩌지 못해 이기지도 못할 술을 먹고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 퍼부을 때면 엄마를 그렇게 만든 술도 밉고 엄마도 미웠다.

     

    간경화로 조심해야 하는 아빠도 늘 술을 마셨다. 술 없이는 하루도 견딜 수 없었던 엄마, 아빠의 삶이 무엇인지 이해해 드릴 마음의 여유가 내겐 없었다. 아이 하나 키우며 내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졌던 그 시절이 너무 힘들어 도망가 버리고 싶었다.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내 삶에 대한 두려움, 매일 술을 마시는 전화해 퍼붓는 엄마와 병원으로 실려가는 아빠, 생떼를 쓰며 내게만 매달리는 아이, 당시의 나는 가장 아프고 힘든 순간을 지나고 있었다.

     

    그렇게 힘든 날들이 지속되었다. 힘든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엄마만 만나면 생떼를 부리곤 했다. 할머니와 전화라도 할라치면 자기를 봐주지 않는다고 울었고, 일을 마치자 허겁지겁 달려간 내게 이렇게 늦게 오면 어떻게 하냐고 야단을 치기도 했다. 서둘러 저녁을 해먹이면 치우기도 전에 놀아달라고 다리에 매달렸다. 그렇게 힘든 날들이 계속되던 어느 날 나는, 내 아이에게 나의 모든 감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억압해둔 감정의 찌거기들이 터져버린 그날 밤, 엄마가 전부였을 그 작은 아이에게 다 쏟아내며 울었다. 아이도 울고 나도 울고, 내 삶속에 가장 아픈 한 장면으로 가슴 깊이 기억되었다.

     

    지금까지도 그날의 아픔은 선연히 다가온다. 아이를 가장 아프게 했던 그 순간은 내 살에 꼭 필요한 순간이었다고 믿는다. 그 아픔 덕분에 나는 아이를 위해 기꺼이 내 삶을 내 놓을 수 있는 용기를 얻었고, 내 삶을 위해 기꺼이 당신들의 삶을 내 놓은 엄마, 아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에게 내 삶을 내어주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배운다.

     

    어느 누구도 제 삶을 내놓기 쉬운 사람은 없다는 것을,

    그렇게 해서라도 지켜주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축복이라는 것을,

    그 축복을 받아들이고 걸어가는 과정이 기쁨만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그 안에 누릴 수 있는 온갖 감정들 덕분에 사랑에 대해 깊이 알게 된다는 것을,

    내가 받았던 넓고 깊은 사랑을 비로소 깨닫고 감사의 마음을 품게 된다는 것을,

    그 사랑 덕분에 지금의 나를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여전히 해결하지 내 안의 문제는 남아 있다.

    여자이기 때문에 부당하게 여겨지는 수많은 삶의 질문들 앞에 나는 여전히 머뭇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질문들을 외면하지 않고 걸어가 보자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보는 것도, 결국은 나를 위해 기꺼이 내어준 두 사람의 삶 덕분이었음을 이제는 알 것도 같다. 내게 주어진 삶을 잘 살아가보고 무한 긍정의 마음, 타인을 향한 신뢰의 마음, 그 마음으로 세상을 밝게 비추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선한 감성, 그런 따뜻함을 품을 수 있도록 나를 키워준 두 사람에게 감사하다.

     

    <나의 두 사람>에게 나는 아직 김 달님 저자처럼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지 못했다. 더 늦기 전에 말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도 어서 나의 두 사람의 삶을 기억하고 그들을 기록하고 싶다. 그리고 그 기록에는 미처 다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가득 담고 싶다.

     

    내게 주었던 깊은 사랑에 대해 감사했다고,

    그 사랑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고,

    그리고 지금의 내가 다시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그 아이를 키워내며 엄마, 아빠가 주었던 사랑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노라고...

     

    나의 모든 이유가 되어준 나의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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