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4천원 인생』을 읽고
    나로 선다는 것/책이야기 2020. 11. 8. 07:20

    또래 아이들보다 한 살이 많았던 DH

    수업시간 내내 엎드려 자던 그 아이의 고단함을 가슴깊이 이해하지 못했다. 다른 친구들이 고3으로 진급할 때 수업일수가 부족해 유급했고, 동생들과 뒤늦은 공부를 해야 했다. 동급생들이 야간 자율학습이 하기 싫어 땡때이를 칠 요량으로 가방을 챙길 때, 그 녀석은 배달 아르바이트를 위해 가방을 챙겼다. 그런 녀석의 삶이 ‘4천원 인생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 한 두푼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녀석을 설득했던 그런 선생이었다.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DH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술 한잔에 잠을 청했던 고단한 일용직의 아버지와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어머니가 그리웠을 그 녀석에겐 공부하라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 왔을리 만무했으리라. 그저 짐작했던 녀석의 고단함을 조금 더 일찍 조금 더 깊이 알았더라면 그런 섣부른 희망을 말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기자들이 직접 경험하고 피와 눈물로 기록한 ‘4천원 인생을 감사히 읽었다.

    노동자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미안함에 가슴이 먹먹했고, 책속에 나온 수많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에게 섣불리 건낸 희망이 절망이 되어 그들의 가슴에 더 깊은 상채기를 낸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기사를 기획하고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직접 체험하고 적어낸 기록이라는 점에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편협한 개인의 시선이라는 비판을 뒤로하고서라도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시도였다. 그들의 바램대로 나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건성이 아니라 몰입하여 읽었고, 삶 속에서 내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뜨거운 교육열을 지닌 대한민국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을 꿈꾸는 수많은 사람들의 바램 때문이었을 것이고, 그 바램들이 실현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바램조차도 거액의 사교육을 감당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만 허락된 희망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학교교육을 통한 계층이동을 낙관하지 않는다. 아이의 대학등록금,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4천원 인생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그들의 삶을 읽으며, 나는 학교 교육의 책무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학교 교육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계층구조는 점차 견고해지고 계층 이동도 낙관하기 어려워진다는 통계조사들이 난무하는 지금의 시점에서 교육에 기대를 거는 행위조차도 무의미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교에서 고단함을 달래는 수많은 DH에게 말해주고 싶다.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한다고.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스스로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 정의를 증명하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고, 너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그 힘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공부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면 그 아이들은 물어올 것이다.

    공부하면 정말 삶이 달라질 수 있느냐고?

    공부하면 정말 세상이 변하게 되는냐고?

    공부하면 정말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느냐고?

     

    그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해주고 싶다.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변할 것이다.

    더 단단해지고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행복해질 것이다.

    진정으로 네가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란다.

     

    빈곤노동이 유전만은 되지 않는 내일을 모색해주는 사회가 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을 보면서 내가 만났던 수많은 DH의 미래를 보는듯해 마음 아팠다. 그러나 그 아픔이 절망이 아닌 희망이 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교육적 책무를 생각하게 했던 의미를 던져준 책이었다. 더불어 나 역시도 감자탕집에서 마트에서 자주 보는 직원들과 자주 볼 기회는 없지만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와 공단 근로자들의 삶을 기억하고, 응원하고 싶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