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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망 없는 불행』을 읽고......
    나로 선다는 것/책이야기 2020. 11. 11. 23:18

    딸로 태어난 너를 보며 엄마는 눈물이 났어. 고생하며 살아갈 네 삶이 가여워서......“

    어린 시절 어머니가 나에게 지나가는 말로 해주셨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잘 알지 못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머니가 말한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객관적 인식이 가능해지고 의문을 품게 되면서 나는 이론과 현실이 불일치된 삶 속에서 많이 힘들었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고 평등하다는데 현실 세계 속의 삶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큰 댁에 가서 제사를 지낼 때면 남자들만 절을 했고, 족보에는 내 이름이 올라 있지 않았다. 왜 내 이름은 없느냐고 따져 묻는 나에게 어른들의 대답은 이해되지 않았다.

     

    그 날 이후 나는 큰댁에 가지 않았다.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의무만을 부과하는 삶을 철저히 거부하리라 마음먹었다. 마음속 분노를 삭히며 열심히 공부했고 소망을 품었다.

    나는 꼭 무엇인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고, 그 소망을 이루는 듯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더욱 기쁘게 나의 소망이 성취되는 순간을 축하해 준 사람이 어머니이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이 사회 속에 묵시적으로 약속된 유교적 질서와 관행들 편입되어 가야 했고, 그 과정들이 강제되어진다는 느낌은 나를 아프게 했다. 결혼할 때 폐백은 신랑쪽 친척에게만 드린다는 점, 결혼 후 명절에는 꼭 남편 집에 먼저 가야한다는 점, 아이를 낳으면 꼭 아버지 성을 따라야 한다는 점, 아이 육아는 꼭 엄마가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점, 남편의 가사노동은 언제나 조력자일 뿐이라는 점, 이 모든 것들이 나는 너무 부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부당함은 나뿐만 아니라 나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나는 나의 어머니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린시절 누구보다 영특했던 어머니였지만 어머니의 어린시절 평범한 가정의 집들이 대부분이 그러하듯 딸들의 공부까지 신경쓸 만큼 유복하지 못했다.

    23녀의 둘째로 태어난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지병으로 가세가 기울어 그토록 원했던 공부를 미쳐 다하지 못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여동생들과 함께 상경하여 공장에 다니며 월급을 모아 외할머니 약값으로 붙여 드리다가 오빠의 친구로 어린시절부터 만나 사랑을 키웠던 아빠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는 22살에 오빠를 25살에 나를 낳으며 어머니가 되었다. 하고 싶었던 공부를 포기해야 했던 어머니의 소망은 간호사 였다고 했다. 그러나 소망을 품기에는 현실의 무게가 무거웠으리라.

     

    그런 어머니에게 새로운 소망을 품게 한 것은 사랑했던 아버지와의 결혼이었을 것이고, 누구보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한평생을 노력하며 사셨다.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품기보다는 아버지와 오빠, 그리고 내가 바라는 소망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한평생을 사셨던 어머니의 삶 덕분에 나는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그런 내가 어머니의 삶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여은이를 키우면서부터 였다.

    처음엔 아이둘 키워줄테니 걱정하지 말라던 친정 어머니가 여은이를 온전히 맡겨둔지 한달 반만에 병을 얻으셔 수술을 하시게 되었다. 그러나 그 수술이 단순히 육아의 부담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IMF때 외삼촌의 사업 보증을 서면서 아빠의 월급차압이 시작되었고, 엄마, 아빠가 한평생 열심히 모으신 재산으로 지은 3층집이 경매삼키고 있다.

     

    그전까지는 입에도 대지 않던 술을 괴로움을 잊기 위해 드시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엄마의 우울감이 깊어져 갔다. 그러나 술은 결코 엄마의 우울감을 해소해 줄 수 없었고 엄마의 몸을 자꾸만 아프게 했다. 그렇게 변해가는 어머니의 모습이 슬퍼 어머니를 몰아세우곤 했다.

    아무것도 소망할 수 없는 당신의 삶이 답답하고 잠을 이룰 수 없는 길고 긴 밤이 힘들어 그런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어머니가 유일하게 생기있는 때는 음식을 장만하실 때이다. 결혼한 지 14년이 되어가는 나의 김장김치는 물론 반찬과 식재료들을 아직까지도 거의 도맡다시피 하신다. 그것마저 못한다면 자신의 삶의 의미는 아무것도 없다며 고집을 부리시지만, 그 후에 병원에 입원하시고 쓰러지시는 일이 잦아지다보니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식 입장에서는 가슴이 무너진다.

     

    한 평생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보지 못한 어머니였다.

    명절이면 식구들 새 속옷과 양말을 준비하시면서도 당신 것은 사지 않는 사람,

    늘 더운밥은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남겨두고 자신은 찬밥을 물에 말아 먹는 사람,

    시댁 식구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그것이 도리라고 여기는 사람,

    하고자 했던 공부를 못하게 했던 부모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을 품지 않는 사람,

    그것이 나의 어머니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머니가 여자로서의 삶에 종속되기 전에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삶에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면, 어머니의 삶이 지금보다 더욱 행복했을까?

    소망 없는 불행의 주인공인 저자의 어머니도 스스로에 대한 삶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서 소망하는 마음을 품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자각이 더욱 잔인하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스스로의 삶에 질문을 품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지금까지 철썩 같이 믿고 있던 삶의 체계 무너져 내리는 혼동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혼동의 순간을 지나치며 선택하는 행동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소망없는 불행의 주인공처럼 극단적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두려워 질문을 품지 않는다고 해서 행복하다는 보장은 없다.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다가오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리라.

    아프면 아픈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아파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며 그렇게 살아가다보면 그 질문에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더불어 나는 나의 어머니가 지아비와 자식들의 소망에 자신의 삶을 비추지 않기를,

    스스로의 삶에 소망을 품게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소망을 품는다는 것은 삶을 사랑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가 나의 소망을 응원해 주었듯이 이제는 나의 어머니의 소망을 응원해 드리는 딸이 되고 싶다. 어머니께 책 한권 선물해 드려야 겠다.

    사랑합니다. 나의 어머니......

     

    57> 그녀는 모든 책이 자신의 삶을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고 독서를 하면서 생기를 얻었다. 독서를 함으로써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을 감싼 껍데기로부터 벗어났고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하는 법을 배웠다. 책을 읽을 때마다 그녀는 더욱더 많은 생각을 떠올렸다. 그래서 나도 그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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