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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멀고도 가까운(객관적 글쓰기)
    나로 선다는 것/책이야기 2020. 12. 5. 04:49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대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누구는 고통을 성장의 기회로 여기고 받아들이고 극복해 나감으로써 성숙한 자아를 위한 여정으로 여긴다. 그러나 극심한 고통에 직면한 사람에게는 피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순간으로 여겨질 뿐이다. 피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다고 해서 그리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살아간다. 결국 고통을 부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고통의 긍정도 부정도 쉽지 않은 우리들에게 리베카 솔닛은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길을 열어간 <천일야화> 속 셰에라자드의 일화를 건낸다.

     

    14> 셰에라자드는 술탄이 매일 밤 흥미를 잃지 않고, 그래서 자신을 죽이지 않게 하기 위해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몇 날 밤, 몇 년이 흐를 때까지 풀어놓은 셰에라자드의 이야기는 죽음을 유예한다.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고 그 안에 욕망과 변신과 시험에 대한 이야기들을 미로처럼 펼쳐 놓는다. 그러는 사이 셰에라자드는 아들 셋을 낳고, 술탄은 조금 덜 잔혼한 사람이 되어 간다.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길을 열었던 셰에라자드처럼 리베카 솔닛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극심한 고통을 긍정하며 조금 더 성숙한 이야기꾼으로 거듭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우리는 자유로운 상태가 되는 법을 배우게 된다.

     

    15> 자유로운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이야기에 질문을 던지고, 잠시 멈추고, 침묵에 귀 기울이고, 이야기에 이름을 지어주고, 그런 다음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 술탄에게 죽임당한 숫처녀들은 술탄의 이야기 안에 있었다. 셰에라자드는 노동자의 영웅처럼, 생산 수단의 통제권을 쟁취한 다음,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길을 열었다.

     

    그녀의 이야기에 질문을 던지고, 잠시 멈추고, 침묵에 귀 기울이고, 이야기에 이름을 지어주면서 이야기꾼이 된 그녀의 이야기에 나의 이야기가 뒤섞인다. 그러는 사이 그녀가 느꼈을 읽기와 쓰기의 깊은 고독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전해짐을 느끼게 된다. 그 느낌을 가슴에 품게 되는 어느 날, 그녀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고통을 긍정하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은 그녀를 사랑함으로 얻게 된 가장 커다란 수확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통 앞에 자유로운 상태가 되기는 쉽지 않다. 고통 앞에 자유롭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이루는 과정에서 겪는 자연스럽고, 또 피할 수 없는 단계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통을 긍정하기 쉽지 않은 우리들에게 그녀의 이야기는 위로가 된다.

     

    <멀고도 가까운>은 리베카 솔닛이 살면서 경험했던 고통의 순간들을 아름다운 스스로의 이야기로 이겨나간 여정이 담겨있다. 딸의 눈부신 금발과 글쓰기 재능까지 질투했던 어머니와 치매에 걸려 일상을 온통 뒤흔들던 고통의 순간으로부터 순간 이동을 감행한 그녀의 모험이야기, 가장 힘들 때 자신을 떠나간 남자친구의 이야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스스로에게 다가온 건강악화까지...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고통의 순간들을 감싸 안은 그녀의 이야기와 마주하다보면, 고통을 긍정하게 되고, 삶을 긍정하게 된다.

     

    377> 작가는 숙제처럼 떨어진 살구 앞에서 어머니의 삶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들을 수 없다면 스스로 찾아보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많은 이야기들을 거친다. 눈의 여왕이 등장하고 프랑케슈타인이 등장하고, 체 게바라의 혁명이 등장하고, 아이슬란드의 늑대 이야기가 등장하고, 남편과 아이의 사체를 뜯어 먹을 수밖에 없었던 에스키모 여인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이야기들을 거치며 작가는 어머니와 화해한다. 그건 어머니와의 화해이면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는 자신과의 화해이기도 했다. 수많은 이야기들과 그 이야기들을 만났던 당시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 혹은 번역자인 내가 읽고 싶었던 말은 아마 그것이었던 것 같다. 이야기가 화해의 방법일 수 있다는.....

     

    결국 리베카 솔닛은 <멀고도 가까운>에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을 우리에게 안내한다. 자신을 보지 않으려는 수많은 방식(분열, 기만, 망각, 정당화 등)으로 견딜 수 없는 현실을 피해가는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녀가 던진 질문에 답하다보면 삶이 만들어낸 작품으로서의 자아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다보면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했던 누군가와도 그리고 자신과도 화해하게 될 것이다. 화해의 방법으로서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은 당신에게 <멀고도 가까운>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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