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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객관적 글쓰기)
    나로 선다는 것/책이야기 2020. 12. 3. 06:10

    어느 날 부터인가 집안 빼곡하게 들어찼던 그림책을 하나 둘 빼고, 그 자리를 글 밥 책들로 채워가며 속으로 환호성을 지른 엄마, 아이가 글밥책의 스토리에 빠져드는 것을 보며 엄마의 책육아의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는 듯 웃음을 지어 보였던 나다. 그런 내가 그림책을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2주에 한번 그림책 읽어주는 봉사를 시작했다. 일찍 읽기 독립을 마친 아이 덕분에 오랜만에 읽어줄 그림책들을 고르느라 진땀을 뺐다. 진땀을 뺐던 이유는 그림책에 대한 나의 편견 때문이었다. 그림책은 어린 아이들이 한글 떼기 전에 읽어야 하는 책이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글 밥이 많고 묵직한 주제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찾고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이런 생각들은 하나 둘 변화되기 시작했다.

     

    장면에 담겨진 의미를 생각하고 그 의미가 아이들에게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읽어주는 연습을 했고, 집에서도 베드타임 스토리를 그만 둔지 3년 만에 다시 그림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읽어주면서 울컥 거리는 순간들이 자주 찾아왔다.

     

    그 경험들이 그림책은 어릴 때만 보는 책이라는 나의 편견을 조금씩 벗겨내 주었다. 그렇지만 읽어주는 엄마의 마음이 자꾸만 일렁거리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 감정들이 내 안에 차 오를 때,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를 만났다.

     

    7p> 오늘이 행복하지 않은 수많은 어른이 간절히 찾고자 하는 지혜, 그리워하는 근원적 에너지가 실은 어린 시절 읽었던 그림책 안에 모두 담겨 있음을 깨닫고 나는 전율했다. 공감 능력을 잃고 혐오와 조롱의 언어가 일상이 된, 벌레 먹은 한국 사회를 해독할 성분이 그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부터 어린이용 책이니 어른용 책이니 하는 구분은 무의미했다.

     

    저자의 서문을 보면서, 내 감정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감정을 알고 나니 해답도 궁금해졌다. 마치 지금의 내가 고민하고 있던 것들을 이 저자는 어떻게 알고 그 먼 곳 까지 가서 나를 위해 그림책 작가들을 만나주었을까? 생각이 들만큼 기대감이 컸다.

     

    저자가 여러 해 그림책에 탐닉하면서 느꼈던 물음들, 그 중에서도 삶이 팍팍하고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때 어떻게 창의성을 회복할 수 있는지, 타오르는 호기심은 어디에서부터 오는지? 창의성에 유년기가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라는 세상의 통설이 진실인지? 그녀의 질문과 그림책 작가들의 답을 따라가다 보면, 답을 찾게 되지 않을까? 이미 유년기를 지났고, 지나가고 있는 아이를 키우고 있고, 그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봉사를 하는 나에게도 그 물음들은 절실했다.

     

    저자와 함께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만났다. 10명의 그림책 작가들은 어느 누구도 똑같이 말하지 않았다. 창의성은 무엇인가에 대해 서로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조엘 졸리베는 애정을 가지고 사물을 관찰하는 태도라 했고, 키티 크라우더는 상상을 만드는 질문이라 했다. 올리비에 탈레크는 공감으로 경계 뛰어넘기라 했고, 클로드 퐁티는 치유하는 상상이라고도 했다. 세르주 블로크는 우선 질러보는 작은 용기라 했고, 벵자멩 쇼는 결점에서 태어난 창의성이라 했다. 에르베 튈레는 깊은 심심함과 불확실성을 끌어안는 힘이라 했고, 안 에르보는 다르게 보기, 오래 보기라고 했다. 이치카와 사토미는 자기 시간의 주인으로 사는 법이라 했고, 마지막으로 베아트리체 말레마냐는 자기믿음이라고 했다. 서로 다른 그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하나 속 깊이 관통되는 하나의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온전한 자신이 된 그들의 삶이 글과 그림으로 표현되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사실을 이해하고 나니 저자의 삶과 그림책을 더욱 깊이 읽게 하고, 더 깊이 감동하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좋은 그림책의 기준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저자의 통찰에 의하면 좋은 그림책은 글이 서술하지 않는 부분을 그림이 보여주고, 그림이 비워 놓은 지점을 글이 채운다. 그래서 그림책 작가들은 어느 하나 허투루 제시하지 않는다. 지면의 크기, 지면의 촉감, 강조점과 여백 사이의 리듬, 가독성, 각 페이지에서 공개하는 정보량과 책장을 넘길 때 걸리는 시간까지 고민한 책, 그런 책들이 좋은 책이다.

     

    이에 한 가지를 덧붙여 본다.

    좋은 그림책은 작가들의 그러한 글과 그림이 삶을 배반하지 않는 책이다.

     

    글과 그림과 작가의 삶이 어우러지는 좋은 그림책이 궁금한 독자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좋을 책이다. 더불어 온전한 나로 살아갈 용기, 그 용기를 위해 시간을 내어줄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되는 것은 이 책이 당신에게 준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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