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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밥상나로 선다는 것/책이야기 2020. 11. 30. 23:46
무지
어린 시절부터 육식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회를 먹고 나면 알레르기처럼 빨갛게 돋아나곤 해서 날 음식도 즐기지 않는 편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안 먹으면 그만이었는데,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부터는 그것도 쉽지가 않다. 가리는 음식이 많은 나를 까탈스럽다 여기지는 않을까 싶어 먹기 어려운 음식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보양식이라고 권하는 보신탕, 염소탕은 기본이고, 곱창과 순대까지...... 어른이 되면 이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먹어야 한다는 바보같은 생각으로 시도를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먹고서 탈이 나 속앓이를 하고서는 음식에 대한 거부권은 챙길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음식에 대한 거부권은 오롯이 자신을 위한 것이었지, 살아 움직이는 생명에 대한 측은지심은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생일이면 한우를 듬뿍 넣은 미역국을 맛나게 먹었고, 명절이면 야들야들한 갈비찜에 젓가락이 갔다. 고기를 즐기지는 않지만 거부하지는 않는, 탈이 나지 않을 정도에서는 고기맛을 즐기는 나였다.
육식을 그닥 즐기지 않는 나이지만 계란과 유제품은 즐기는 편이었다. 계란을 이용한 요리는 담백해서 좋아했다 야들 야들한 계란찜, 색색이 야채 썰어 넣은 계란말이, 비빔밥 위에 얹어 먹는 계란 후라이, 순두부 찌개나 콩나물 국밥에 톡 깨 넣어 살짝 익힌 계란까지.....계란 사랑은 끝이 없었다. 매일 아침 플레인 요구르트에 견과류와 과일을 듬뿍 넣어 먹는 것도 좋아했다. 리코타 치즈를 곁들인 샐러드는 나의 최애 샐러드이기도 했다.
충격
침팬지를 연구하는 침팬지 엄마 제인구달이 말하는 『희망의 밥상』은 어떤 내용일까? 기존의 책들처럼 그저 건강을 위해 유기농법을 활용한 채식위주의 식사를 하자는 내용일거라 미루어 짐작만 하고 책상 한켠에 묵혀두고 있었다. 분주한 일상에 이리 저리 미루다 보니 책을 제대로 들춰보지도 못하다가, 독서 모임이 날짜가 다가오면서야 읽기 시작했다.
읽어나가면서 너무나 충격적인 이야기들의 전개에 숨이 막히고 목이 메었다. 그동안 내가 아무런 죄의식 없이 선택해 먹고 즐기던 육식과 유제품들이 고통의 산물임을 알고 마주해야 하는 지난 두어주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육식을 즐기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는 그 미안함과 충격의 강도가 줄어들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육식을 좋아하는 남편과 아이 덕분에 거의 매일 고기를 식탁에 올리곤 했던 우리집 식탁이 떠올랐다. 그리고 동물을 키워내기 위해 기업화되는 농업의 세계화와 그에 따른 환겨의 변화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지구적 위기임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책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충격을 받은 나였는데, 수업 직전 권해주신 영상(도미니언)은 차마 두 눈으로 볼 수 없는 장면이 너무 많아 보기가 힘들었다. 인간의 탐욕 때문에 본능적 욕구를 일순간도 누리지 못하는 동물들의 비참한 삶을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너무 아프고 참담한 감정을 느꼈다. 자본주의의 경제 논리에 따라 태어나자마자 죽어야 하는 숫송아지, 수평아리도 가엽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비참한 생활(빠른 시일내에 몸무게를 늘려야 하는 각종 약물과 사료, 인공수정, 산채로 털과 가죽을 내어주어야 하는 것)을 지켜보자니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까지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회한
무지했던 지난 시간동안 아무런 죄책감 없이 나를 위해 죽어갔던 수많은 동물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그 미안함에 가슴이 너무 아프고 눈물이 났다. 내가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지 후회스럽고 나보다 약한 생명에 대한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던 지난날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 힘들었다.
다짐
과거는 되돌릴 수 없고, 내게 남은 것은 현재와 미래이다.
책을 읽고 영상을 본 이후, 나는 과거의 나처럼 육식을 즐기지는 못할 것 같다.
먹음직스럽게 요리된 고기반찬을 보면 도살되는 장면들이 아른거리고 눈물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앞으로 채식위주의 식사를 하리라 다짐했다.
그 다짐을 실천하기 위한 나의 일상의 변화는 먼저 학교 급식을 포기했다.
스스로 챙겨먹는 아침, 저녁은 스스로 음식을 선택할 수 있지만, 학교 급식은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나의 다짐을 실천하기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 챙기고 출근준비 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지만, 거기에 간단한 점심 도시락까지 챙기는 일은 번거롭고 품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나의 작은 실천이 생물을 보존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담은 작은 한걸음이 될 것이라 여기고 생활 속에서 조금씩 실천해 나가고자 한다.
마음에 품은 한문장
끝으로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담은 한문장을 공유하며 리뷰를 마무리 하려 한다.
저항할 힘이 없는 생명체를 존중하는 마음을 담은 내가 되기를,
더불어 우리가 되기를 소망하며,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동물을 대하는 방법을 통해 판단할 수 있다.
나는 저항력이 없는 동물일수록 인간의 잔인함으로부터 인간에 의해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 마하트마 간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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