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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나로 선다는 것/책이야기 2020. 12. 27. 15:33
사실 김유진 선생님과의 인연이 아니었다면 이 책과의 인연도 그리 쉽게 맺지 못했을 것이다.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처음 이 책을 읽었고, 또다시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두 번째 이책을 읽었다. 그래나 같은 책을 두 번 읽었다고 해서 그 느낌이 동일한 것은아었음을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깨닫게 되었다.
작년 8월에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은 책의 제목처럼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같다. 아니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해는 내면에서 울려오는 이해라기 보다는 이해해야 한다는 당위적 상태에서의 이해였다는 느낌이었다는 것을 2번째로 읽고 나서 생각을 정리해보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작자인 파커 J. 파머조차도 평생에 걸쳐 고민하고, 어둠으로 가라앉고서야 얻은 통찰을 한번에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착각이었고 자만이었을 것이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만 보인다는 걸, 내가 깨닫는 만큼만 가르쳐 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겨우 두 번 읽은 책의 내용을 모두 다 알고 있고, 통찰하여 삶의 진리를 터득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책이 던져주는 삶의 화두인 소명에 따른 존재로서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작가가 표현한 내면여행에 내 몸을 맡기고 내면의 삶을 탐험해야 하며, 이를 위한 내면활동으로의 책읽기와 글쓰기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전까지 나의 삶은 소명에 귀 기울인 삶이 아니었음을 누구보다 내 자신이 명백히 알고 있다.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해야 했고, 그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노력하면 그 많은 것들의 일부를 하나씩 하나씩 얻어 갔으며, 얻어가던 그것을 향해 위험한 줄 모른채 내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소유하면 할수록 소유물에 대한 만족감보다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지 못한 부족에 허덕이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노력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없다는 단순명료한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괴로웠다. 내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지고, 내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내 노력의 부족에 걸림돌이 될만한 것들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을 품기도 했다. 그 걸림돌의 가장 커다란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라는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교차하면서 나는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어둠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몸에 병이 생겼고, 마음 깊은 우울감이 자리했고, 삶의 고단함으로 아이를 모질게 할퀴고 퍼부었으며, 돌아서면 회한의 눈물을 흘리고, 내 노력의 댓가가 정당하지 못한 세상을 탓하며 세상이 온통 나에게 등돌리고 상처만을 안겨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어둠의 터널을 통과하며 갈 곳을 몰라 방황하는 나에게 삶은 나에게 길을, 방향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지만 기다려 주었다. 내 스스로 그 길을 통과해 갈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그 기회를 나는 연구년이라는 선물로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이 아니었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그 기회를 나는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스스로 그 어둠의 터널을 통과한다는 것은 두려움이 많은 나에게 진실로 어려운 시간이었으며, 누군가에게 매달리고 싶었고,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 그러나 외부의 무언가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은 더 커져만 갔던 것 같다.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미친듯이 책을 읽고, 밑줄을 긋고, 생각하고 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났던 2014년의 어느 봄날을 말이다.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해 읽고 또 읽었던 수많은 책장의 어느 한 장을 넘기려는데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났다. 그 눈물겨운 어둠의 터널속에서 한줄기 빛을 발견했다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 싶지만, 그런 감정을 느낀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 잘못이 없었던 나에게 세상이 할퀴고 등 돌리고 했다고 여겼던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내 자신의 마음 때문이었음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 이해는 나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 고민이 바로 작가가 말한 소명이 아니었나 싶다.
한 번도 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 보지 못했던 나에게(나는 종교적으로도 무교이기에 내 자신에 대한 믿음, 인간에 대한 믿음, 인간이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오만함에 빠져있었음을 고백한다.) 본성에 거스르는 삶을 살아내면서 나의 참자아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다독여주고 어루만져 주지 못한채 더욱 아프게 했고, 더욱 힘들게 했으며, 결국 나는 극한에 다다랐던것 같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고, 아파있었고, 쉬고 싶었다. 그 모든 나를 옭죄이는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고 그래서 나를 그냥 내버려 두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의 문제로 인해 나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어린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회한에 가슴 찢어지는 눈물도 섞여 있었으리라.
그러나 내면활동(책읽기와 글쓰기)을 통해 나는 한줄기 빛을 지지대 삼아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이것저것을 시도핳며 다시금 뒤를 돌아보게 했다. 작가의 말대로 내가 가을의 쇠락에 도전하는 생명을 ‘만들려고’하는 것은 아닌지, 생기라곤 없는 그런 인공적인 것을 만들기 위해 너무 나의 인생을 소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한줄기 빛을 발견했다고 생각한 것은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이 두려워 그 속으로 뛰어 들어가기를 머뭇거리며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두려움 속으로 대담하게 들어서기를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그 무지함이 두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2014년 연구년 이후 2015년에 육아휴직에 들어가기로 결정했고, 그 결정을 과거에 비해 편안한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과거의 나는 육아휴직이 삶의 전선에서 낙오될지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고, 나에게 온전히 맡겨질 아이가 두려웠다. 내가 돌아갈 곳이 없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고, 아이를 잘 키워낼 자신이 없다는 두려움이 컸다.
그러나 이제는 그 두려움 속으로 들어가려고 용기를 내어본다.
세상이 나를 잊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나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가져올 것이며, 그 이해는 세상을 통찰할 수 있는 나의 내면의 힘을 키워줄 것이다. 아이를 잘 키워낼 자신이 없는 것은, 아이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지니고 있는 본질을 존중하며 그 본질에 충실하게 자라나도록 길러낼 수 있는 어미로서의 역할이 더 중요함을 깨달았기에 그것으로 내가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를 조금은 덜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삶이 기대된다.
삶이 조금씩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에 귀 기울이고 싶다.
삶과 죽음, 전쟁과 조화, 죽음과 생명 또한 생명 사이클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순응하여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도록, 그래서 세상은 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그로인해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그들에게 힘을 부여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맡고 나머지는 다른이에게 힘을 부여할 수 있는 그런 내적 여행의 선물을 나도 받고 싶다. 그 선물을 위해 나는 이제 내면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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