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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나로 선다는 것/책이야기 2020. 12. 15. 20:49
우리 앞에 펼쳐진 현상들, 분명 같은 현상을 보았을 것인데, 작가 김영하의 눈을 통해 보여진 현상은 나의 눈을 통해 보여진 그것과 같으면서 달랐다.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리뷰를 작성하기 위해 2번을 읽어보았는데, 같은 부분보다는 그렇지 않은 부분에 더 시선이 머무르게 되었다.
선생님 말씀대로 나는 어둠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측면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어둠의 세계가 틀림없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보려하지 않는 나의 눈은 두 개였지만 한쪽 눈을 감아버린 외눈박이로 세상을 관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보다」를 읽으며, 감고 있던 그 눈을 뜨니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작가의 눈을 따라가면서 세상의 어둠을 읽기 위해 얼마나 세심한 눈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있는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특히 책을 읽으며 생각이 오랫동안 머무른 곳이 있었는데, <택시라는 연옥> 챕터 부분이었다. 택시를 통해 세상을 읽고, 그 안에 숨겨진 문제들을 간단히 해결할 수 없음을 이야기 한 그 부분에서 나의 생각이 오래 머무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말한다.
연옥은 천국과 지옥 중간에 있다. 로마 가콜릭이 연옥을 창조해낸 것은 천국과 지옥의 이분법만으로 사후세계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연옥은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세계다. 지옥처럼 괴롭지도, 천국처럼 행복하지도 않다. 연옥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그곳에 머무는 기간이 얼마가 될지 모른다는 데 있다. 또한 연옥에 머무는 자는 스스로 그곳을 탈출할 방법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언제까지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하염없이 머무는 곳, 거기가 연옥이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본원적으로 해결하기를 원한다. 세상 모든 문제에 단순하고 명쾌한 해결책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그런 깔끔한 해결책이 없는 영역도 있다. 택시가 그렇다. 택시는 교육이나 정치가 그렇듯이 한 사회의 문제를 그대로 반영한다. 택시는 음주 문화, 육체노동자 천시 풍조, 무질서한 교통, 높은 강력범죄율 같은 문제를 떠안고 있는 우리사회의 거울이다. 누군가 이걸 간단하고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적어도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김영하 「보다」, 문학동네, 2014 p177-
누군가 작가에게 지금껏 가장 천착해온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교육’이라고 답할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품어왔던 ‘교사’가 되고자 꿈을 품었고, 그 꿈을 이루었고, 그 안에서 19년(-3년 육아휴직)을 살아왔다.
더불어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부터는 아이 ‘교육’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서 교육현장(학교) 이외의 공간에서 행해지는 더욱 방대한 ‘교육시장’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교육시장은 달콤한 불량식품 같았다. 먹을수록 달달했고 자꾸만 더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먹고 나면 몸도 마음도 허약해지고 병이 났다. 더 좋은 불량식품을 찾아다니고 헤매이던 찰나에 어린이집 영어 선생님과의 상담은 나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그 당시까지도 나의 마음은 불량식품과도 같은 교육시장에 대한 의문보다는 내 아이의 ‘영어교육’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마음하나로 시작했던 엄마공부였는데 그 첫 시작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내 아이를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할 존재는 엄마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공부였고, 그 공부를 통해 나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아이에게 행했던 수많은 무지와 위선의 사랑을 속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속죄의 시간을 견디어 내기 위해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지금까지 왔다.
4년여의 엄마공부를 통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스스로의 행복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내 아이와 학교에 있는 아이들에게 주었는가의 문제이다. 행복은 누군가가 대신 찾아줄 수 없는,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인생숙제이다. 하지만 그 행복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교사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첨가물을 섞어 아이들에게 주었던 것이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아이들에게, 사랑만이 전부인 아이들을 너무 아프게 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니 가슴이 미어진다.
부모는, 그리고 교사는 아이들이 스스로 행복을 찾아갈 수 있는 기회와 권리를 지켜주어야 할 존재들인데, 그렇지 못했던 내 자신을 발견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구나 싶다. 그러나 그 오랜 시간은 지금의 통찰을 얻기 위해 꼭 필요했던 어둠의 시간들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김영하 작가에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마음에 들어 갔듯, 나에게는 ‘교육’이 들어왔고, 그 ‘교육’의 반경이 학교현장에서 16년, 학교 밖 사회에서 9년을 머무르면서 수많은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나는 지금의 ‘눈’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이 ‘눈’으로 내 아이를 볼 것이고, 학교의 아이들을 볼 것이고, 이 세상을 볼 것이다.
작가의 이야기대로 교육 문제가 본원적으로 해결되기를 원하지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사회는 그리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고, 그것을 발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더욱 치밀하게 은폐될 것이다.
그러면 이제 나는 선택해야 한다.
세상에 맞춰 자신을 바꿀 것이냐, 세상을 자기에게 맞게 바꿀 것이냐를 말이다.
어차피 이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부, 명예, 권력의 희소성 앞에 내던져질 우리 아이들이 더 많은 것을 지니도록 준비시키는 부모와 교사가 될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기다림과 사랑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부모와 교사가 될 것인지를 말이다.
그동안의 엄마공부로 통찰하게 된 행복의 비밀을 내 아이(Lucy)와 내가 만나게 될 아이들도 만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움을 줄 것인지, 더불어 그 아이들과 가장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 엄마와 교사들의 마음에 다가갈 것인지, 이것이 나의 작가적 소명이 될 듯하다.
김영하 작가의 눈으로 본 세상을 통해 나는 나의 눈으로 보아야 할 세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세상을 발견한 것이 반갑지만은 않음은 그 안에 존재하는 어둠 때문일 것이다. 그 어둠속에 시들어갈지 모를 내 아이를 위해, 그리고 내가 만날 아이들을 위해 공부하고 글을 써야 겠다. 그래서 내 아이가 행복하고,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행복하고, 그 아이의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행복해진다면 나 또한 행복해질 것이다.
행복의 기준이 반드시 부, 명예, 권력이 아니라고 믿는다면, 그 명제를 입증하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그 최선의 삶에 몰입하고 싶은 키워드 ‘교육’를 찾은 선물 같은 책, 김영하의 <보다>는 그렇게 내 마음에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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